스물다섯 번째 시간-『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나는 장갑을 들어 올리며 뭐냐고 물었다.
“조사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장갑을 손에 들고 마치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사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조사해나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36쪽)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병이라는 것은 알지만 병 덕분에 기분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런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좋아요.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후략)”(181쪽)
“……하지만 치료받는 것도 손가락질받는 것만큼이나 싫어요. 이렇게 넘치는 기운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살아 있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되도록 해주실 수는 없나요?”(182쪽)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내게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사람이 리베카였다. 우리는 소위 ‘결함 연구’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내러톨로지’(서사학)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러톨로지’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 (305쪽)
그들이 수와 놀고 수를 끄집어내려는 것은 인생 그 자체를 살아보려는 몸짓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 열쇠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 그들의 그러한 행동거지는 기이하지만 정확한 의사소통방식일지 모른다.(352쪽)
그는 환자를 편견과 지식으로만 대하지 않았으며 신중한 접근으로 그들의 삶을 먼저 생각했다. 환자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섣부르게 나누지 않고, 동정 대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뇌과학·신경의학 분야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탄탄한 주춧돌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뒤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