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Oct 17. 2020

동정보다는 함께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스물다섯 번째 시간-『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기묘한 이야기였다. 아무 정보 없이, 그저 제목만으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첫 페이지를 넘겼다가 큰코다친 이야기였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학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직접 진료하고 관찰했던 수많은 환자들에 대한 사례 보고서였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면서 책의 분류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봤더라면 이 책이 소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명백하게 ‘과학 분야’로 분류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허구적으로 느껴져서 ‘이게 말이 돼? 현실에서 이런 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고?’ 끊임없이 되뇌며 읽어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병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니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런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해하고 함께 살 길을 모색하는 인간적인 의사의 이야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대한 리뷰를 시작해 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병의 양상에 따라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으로 분류되어 있다.     


1부 상실에서 다루는 사례는 특정 신경 기능에 결함이 생겨 장애가 발생한 경우이다. 말소리 상실, 언어 상실, 기억상실, 시각상실, 정체성 상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기능의 사실, 그 밖의 특정 기능의 결함 등이 해당한다. 기억상실증이나 실어증과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시각 상실이나 정체성 상실, 몸을 움직이는 기능의 상실은 매우 새로운 것들이었다.      


책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상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다니? 정말 말 그대로 아내를 모자라고 생각하고 끄집어와 머리에 쓰려는 시늉을 하는 P교수의 이야기이다. P교수는 시각을 상실한 환자였다. 보통 시각을 상실했다고 하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지만 이 이야기 속 P교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장갑을 들어 올리며 뭐냐고 물었다.
“조사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장갑을 손에 들고 마치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사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조사해나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36쪽)          



장갑을 보고도 장갑인 줄 모르는 사람이라니! 실제 사례라는 것을 알고 책을 읽는 데도 낯설었다. 정말로 이런 병을 앓는 사람이 현실에 있다는 말인가. P교수는 어떤 물건도 친숙하게 보지 않았지만 오히려 추상적인 형태(정육면체나 십이면체와 같은)를 인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P교수의 시각 기능에는 구체성의 세계가 상실되었고 오직 추상적인 세계만 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무엇을 상실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상실’에서는 P교수와 같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길 잃은 뱃사공」의 지미(기억 상실 환자),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의 크리스티너와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의 남자(몸을 움직이는 감각을 상실한 환자),「매들린의 손」의 매들린(손으로 무엇인가를 지각하는 감각을 상실한 환자), 「수평으로」의 맥그레거(제육감의 상실로 바른 자세로 설 수 없게 된 환자)까지……. 제 다리를 보고도 제 다리인 줄 모르고, 자기 손에 놓인 것을 쥘 줄 모르고, 자신의 몸을 바로 세울 줄 모른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인지 사실 잘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실의 사례들이 내게 남긴 것은 특이하고도 기묘한 병의 증상들이 아니었다. 그 일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자세와 그들을 대하는 의사의 태도였다. 대개는 자신에게 그러한 질병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면 좌절하고 절망하기 마련인데 책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상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나, 이후로는 어떤 식으로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단히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몸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고자 애쓰는 크리스티너나, 손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60세가 넘은 나이에 마치 어린아이가 사물을 탐구하듯 모든 사물을 세심하게 쓰다듬고 만지기 시작한 매들린, 몸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특수한 안경을 스스로 고안한 맥그레거까지……. 그들의 모습이 경이롭게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자신의 병에 그토록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전까지 온전한 정체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잘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올리버 색스라는 환자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인간적인 의사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그들을 진료하고 처방하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과 함께 치료법에 대해 고민했다. 의사로서 그들이 어떻게 병과 더불어 남은 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그들의 삶의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며 끝까지 그들을 한 개인으로 존중했다.      




2부 과잉에서 다루는 사례는 뇌와 정신이 고양되어 과도하게 활발해진 경우이다. 뇌와 정신이 과도하게 고양되면 틱이나, 감각의 도착증, 폭력적 격정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는 투렛이나 틱 증후군, 현실적 맥락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 등이 등장한다.      


‘과잉’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큐피트병」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90세의 쾌활한 할머니 나타샤는 그는 뇌와 정신이 고양되는 덕분에(?) 생의 활기를 얻어 병에 걸린 생활에 오히려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병이라는 것은 알지만 병 덕분에 기분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런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좋아요.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후략)”(181쪽)
“……하지만 치료받는 것도 손가락질받는 것만큼이나 싫어요. 이렇게 넘치는 기운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살아 있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되도록 해주실 수는 없나요?”(182쪽)     


나타샤에게 올리버 색스는 페니실린을 처방했다. 페니실린은 스피로헤타균을 죽이기는 하지만 뇌의 변화나 탈억제 상태를 되돌리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앞서 1부 '상실'에서 그랬듯이 환자의 병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세균으로만 보지 않는 의사의 시선, 환자가 남은 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태도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제3부 이행에서 다루는 사례는 심상과 기억의 힘으로 끊임없이 과거로 이행하는 경우이다. 「회상」에서는 회상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C부인과 괴로움을 느끼는 M부인이 이야기, 「인도로 가는 길」에서는 고향에 대한 회상에 빠진 채 죽음을 맞이한 19세 소녀 바가완디의 이야기 가 등장한다. 같은 병이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행복을, 누군가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새로웠다.      


과연 ‘병’이라는 건 무엇일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병이라는 것은 고통, 좌절, 아픔 등을 반드시 수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읽어나가며 누군가의 어떤 병은 그의 아픔이나 고통을 줄여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병’일까?          




마지막 제4부 단순함의 세계에서는 지능이 떨어지는 환자들의 경우로 자폐증, 지적장애아들의 이야기가 주로 등장했다. 4부는 이전 사례들에 비해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경우라 조금은 덜 낯설게 읽어나갔다. 하지만 읽을수록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고, 한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우리가 고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다.

     

「시인 리베카」의 리베카는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는 전혀 하지 못하지만 문학적 재능만큼은 천부적이었다. 「살아있는 사전」의 마틴은 지적장애인이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놀라운 기억력을 보였다. 「쌍둥이 형제」의 존과 마이클은 자폐증, 지적장애, 정신병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상한 기억력으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며 수에 있어서만큼은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다.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의 호세 역시 지적 장애와 자폐증을 갖고 사회에서 격리된 채로 오직 가정에서만 생활하고 있었지만 그가 가진 그림 그리는 실력은 여느 예술가 못지않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사례는 지적장애나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 중 극히 일부의 사례일 수도 있다. 모든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사례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내게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사람이 리베카였다. 우리는 소위 ‘결함 연구’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내러톨로지’(서사학)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러톨로지’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 (305쪽)     

그들이 수와 놀고 수를 끄집어내려는 것은 인생 그 자체를 살아보려는 몸짓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 열쇠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 그들의 그러한 행동거지는 기이하지만 정확한 의사소통방식일지 모른다.(352쪽)          


우리와 어딘가가 ‘다르다’고 생각해서 배제한 사람들, 소수자로 낙인찍어 사회의 변두리로 내몬 사람들을 바라보며 올리버 색스는 그들의 기이한 행동이 어쩌면 ‘정확한 의사소통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열쇠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지,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 애썼다고 했다.  

    

뜨끔했다. 우리가 보기에 또는 함께 하기에 불편하다고 해서 그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는지, 그들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들도 치부하지는 않았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결함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가진 것을 보지 못하는 사회, 나 역시도 그 사회에 구성원으로 살면서 그들의 결함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과 마주하자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는 환자를 편견과 지식으로만 대하지 않았으며 신중한 접근으로 그들의 삶을 먼저 생각했다. 환자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섣부르게 나누지 않고, 동정 대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뇌과학·신경의학 분야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탄탄한 주춧돌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뒤표지)         


저자에 대해 더 이상 잘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 책은 저자가 환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환자에 대한 최선의 노력에 대한 기록물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의사도 아니면서 그동안 누군가를 바라볼 때 쉽사리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쉽게 동정하고 연민하면서도 아무런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가 ' 생각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답은 책 속에서 저자가 던진 말 곳곳에 모두 숨어 있었다. 그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 그것부터 출발해야 했다. 나아가 그 마음가짐을 태도와 실천으로 드러내어 보일 수 있다면, 특정 분야의 주춧돌은 세울 수 없더라도 이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모래알 만한 힘은 보탤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테드 창의 소설, 쉽지 않았지만 읽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