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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03. 2020

나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스물일곱 번째 시간-『나를 망치는 나쁜 성실함』(전민재)

‘성실하다’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대개 긍정적인 것이다. 이 ‘성실하다’는 단어 앞에 붙은 ‘나를 망치는 나쁜’이라는 수식어가 생경했다. 그러면서도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실함이 무엇일지 알 것 같았다. ‘인정투쟁, 완벽주의, 강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이라는 부제에서 말하듯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성실함, 나를 돌아보지 않는 성실함, 일종의 강박증인 성실함은 ‘나쁜’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요즘 들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책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가 나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나를 망치는 나쁜 성실함』, 이 책도 제목에 이끌려 홀리듯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도 그동안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고,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종의 강박처럼 있었던 사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저자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심리치료사의 길을 걸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결국 극도의 불안, 공황,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자는 스스로를 돌아볼 용기를 내었다는 것이었다. 꽤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았으며 이제 조금은 자신을 망치는 나쁜 성실함을 내려놓고, 자신을 살리는 건강한 성실함을 찾아가는 길에 서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노력을 자신을 가두었던 수많은 틀에 직면하고(chapter1),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던 웅크린 그림자를 만나 화해하며(chapter 2),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온전한 지지자로 거듭나는 과정(chapter 3)으로 나누어 아주 상세하고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다툼과 남동생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겪었던 저자는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자신을 돌보아주지 않는 엄마에게 어떻게든 인정받고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과를 내려 애썼고, 좋은 직장을 가진 뒤에는 자신보다 엄마의 욕구에 더 먼저 반응하려 노력했다. 남동생에게 질투를 느꼈지만 인정하지 못했고, 그런 마음이 드는 만큼 더 고군분투했을 따름이었다.     


자신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기에 그의 기대와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겠지만,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넓은 영역으로 퍼진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욕구와 바람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타인의 것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온다.(139쪽)     


저자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대상이 엄마였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애인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선생님이나 친구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보다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순위에 놓곤 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욕구와 바람은 뒤로 미룬 채 상대방의 그것을 위해 애쓰는 삶은 사상누각일 확률이 높다.  삶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타인의 기대를 반드시 채워줘야 할 의무는 우리 모두에게 없다. 기대는 상대방의 몫이다. 설사 그것을 채워주지 못해 상대방의 애정과 인정을 얻지 못하게 될지라도 그 또한 괜찮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어떤 부분에서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82쪽)     


『미움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풀어낸 『미움받을 용기』는 한 때 서점가를 휩쓴 베스트셀러였다. 읽기 전에는 뻔한 심리학 책일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 아주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는데 큰 울림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위 인용문과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그것은 타인의 과제라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인생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할 일만 하면 된다(『미움받을 용기』,172쪽)



두 글의 맥락이 너무나 유사했다. 결국 타인의 기대보다 스스로의 기대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감정적 교류가 전혀 없는 누군가에게도 그러니, 하물며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타인의 인정과 애정을 얻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온 시간이 참 길었다. 은근슬쩍 자기 일을 미루던 직장 선배들과 동료들의 부탁을 애써 괜찮은 척 받아 들고는 내 일까지 미뤄가며 그 일에 매달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내 기호보다는 상대방의 기호에 맞추려 한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인정에, 애정에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다 의도치 않게 상대방과의 관계가 뒤틀리게 되면 몇 날 며칠 잠도 잘 못 자고 소화도 잘 못 시킬 만큼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 그들과의 관계가 뭐라고 그토록 힘들어했나 싶다. 스스로의 가치를 세우지 못하고 언제나 남들의 평가와 인정에 휘둘렸던 내가 안쓰럽다.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다행히 나도 저자와 같이 몇 년 전부터 스스로를 찾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는 것이다.     




노력의 시작은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소망에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조언들로 가득한 육아서는 나와 맞지 않았다. 차라리 인문서를 읽자고 마음먹고 읽기 시작한 책이 자존감과 관련된 책들이었다. (정서적 금수저와 정서적 흙수저, 자존감 수업, 꾸베 씨의 행복여행  등)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작 내가 맞닥뜨린 것은 나 자신의 자존감이었다. 엄마의 자존감이 흔들리는데 아이의 자존감이 높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엄마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랑하기 위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읽는 것만으로는 어딘지 허전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 문제는 남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느냐다. 자기 스스로를 충분히 신뢰하고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인정과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타인의 비판적인 평가나 무시하는 말들이 상처가 되고 비수가 되는 기저에는 스스로를 그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228쪽)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일, 아주 중요하지만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더 노력하고 더 애써야 한다.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 이상으로 내 마음을 살펴야 하고, 타인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 전에 내 욕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 욕구와 내 마음이 타인에게 휘둘리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지킬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타인도 제대로 사랑하고 지킬 수 있다.     


여전히 나는 타인의 인정에 흔들리고 내 삶을 주변의 기준에 비교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내가 원하는 삶과 내가 기대하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주 조금은 찾아낸 것도 같고.




스스로 성실하다 느끼면서도 자신의 성실함에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다. 혹시 당신의 성실함이 타인을 향해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자신을 망치는 나쁜 길에 서있지는 않은지 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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