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변화시키려면, 나부터 변화할 것

by 진아

얼마 전 떼를 부리는 사랑이를 훈육하다가 사랑이에게 모진 말을 들은 날이 있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떼’였지만, 사랑이 입장에서는 ‘서운함’이었을 일이었다. 아이의 입장이 이해된 건 훈육 상황이 이어질 때가 아니라,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그제야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냥 좀 받아줄 걸, 내가 조금 더 참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또 그랬다.


어떤 상황이든 지나간 후에 곰곰이 돌이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차분하게 설명하고 기다려서 해결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일이 잦았다. 기다리기보다는 재촉하기에, 설명하기보다는 윽박지르기에 바빴다.


사랑이가 “엄마 나빠, 엄마 미워, 엄마 죽어!” 분노에 찬 세 마디를 내뱉었을 때, 쏟아지던 감정이 한순간에 수도꼭지 잠기듯 탁 잠겨버렸다. 아이의 말에 서운함을 넘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에게 얼마나 화가 났으면, 얼마나 서운했으면 네 살 아이의 입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말이 튀어나온 걸까. 내 안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잠시 사랑이와 떨어져 나를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신랑에게 반나절의 휴가 아닌 휴가를 받아 친정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았다.


그동안 훈육의 과정에서 지키려고 가장 애를 쓴 것은 '일관성'이었다. 허용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에게 가닿은 것은, 어쩌면 '일관성 있게 엄격한' 엄마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엇 하나를 해도 완벽하게 해내려 애써온 나의 성격이, 서너 살짜리 아이를 훈육하는 일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때쯤부터 시작된 훈육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친 말을 하거나 매를 든 적은 없었다. 훈육이 끝난 후에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표현도 잊지 않았다. 평소에 아이와 교감이 부족하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해 왔다. 그게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제재가 많은 엄마였고, 아이는 자기 주도성이 강한 아이였다. 제재가 많다고 해서 아이의 호기심이나 도전정신을 억누르는 엄마는 결코 아니었지만, 터울 적은 두 아이를 키우며 유난히 첫째에게 조금 더 조심시킬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다. 올해는 코로나까지 기승을 부린 탓에 집 안에서만 몇 달을 생활하다 보니 "이건 된다, 저건 안된다..." 등등 더 많은 제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자기 주도성이 강한 데다 정서적으로는 예민해서 그런 통제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반복 설명과, 속상한 마음에 대한 공감이 꼭 필요했다.


'에너지가 없다, 두 아이를 종일 돌보는 것이 힘들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가장 좋은 핑계였다.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지쳐있었고, 그런 내게 아이가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면 '네가 그러니까 엄마도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었다. 아이를 훈육한다고 하면서 눈에서는 레이저가, 목에서는 큰소리가 거침없이 나오는 데도 나는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했다. 엄마가 이러는 건, 모두 네가 잘못해서라고.


어찌어찌 상황이 마무리되고 아이를 품에 안으면 어김없이 아이에게 미안했고, 그런 날은 일기장 가득히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엄마 반성문을 썼다. 그러고 얼마 뒤면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런 훈육 상황들을 통해 아마 아이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아,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바른 길을 알려주는 거구나'가 아니라,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가 많이 났구나'였을 것이다. 끝내 그런 방식이 통했다면 나는 반성도 하지 않은 채,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자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완벽하게 틀렸다.




훈육이라는 건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르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에 가르치는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려주는' 훈육을 했어야 했다. 나는 이제까지 훈육이 아니라, 화를 낸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언제까지 이미 벌어진 일을 반성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 정말로 내 아이를 위해서 달라져야 했다. 아이를 달라지게 하려면, 결국은 엄마인 내가 달라져야 했다.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그 날 이후 스스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절대 소리 지르지 말자.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닫고 시간을 벌자.

아이가 지나치게 떼를 부릴 땐 일단 기다리자.

지난 2주 간 스스로 세운 원칙을 어떻게든 지키려 애써왔다. 전 같았으면 이미 아이 이름을 힘주어 부르고도 남았을 법한 상황이 왜 없었겠냐 마는,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내 마음이 가라앉으면 가능한 한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다. 그러기를 며칠쯤 지나자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의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던 아이는 전보다 확실히 화를 덜 냈다. 가끔 화를 내거나 울더라도 진정되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단축되었다. 저와 내가 부딪칠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아이는 훨씬 더 안정되어 보였다. 나 스스로도 소리 지르고 화낼 일을 줄여나가니 전과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화가 덜 나거나 어떤 땐 신기할 만큼 화가 나지 않기도 했다.




며칠 전 저녁을 먹으며 사랑이가 별일 아닌 것에 소리를 지르고 떼를 부리려고 하길래 “사랑아, 소리 지르지 않고 말하면 좋겠어. 엄마도 이제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너한테 소리 지르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내 마음의 변화를 아이에게 직접 밝히지는 않았었다. 괜히 말했다가 못 지키면 아이가 더 실망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제 아이에게 내 다짐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나를 한 번 쓱 쳐다보았다.

"사랑아, 이제 우리 이걸 우리 집 첫 번째 규칙으로 만들자. "소리 지르지 않기!" 어때?"

"음... 좋아! 난 엄마랑 아빠가 소리를 지르면 너무 무서워서 더 소리를 질러."

"그동안 그래서 사랑이가 엄마 아빠한테 혼날 때 더 소리를 크게 질렀던 거구나. 엄마가 미안해. 이제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


그동안 아이가 두려움에 방어기제로 소리지르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자꾸 더 큰 소리를 지른다고 혼내고 윽박질렀던 내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꼭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날 밤, 아이와 잠자리에 누워서 대화를 나누었다.


"사랑아, 우리 집 첫 번째 규칙이 뭐였지?"

"소리 지르지 않고 말하는 거"

"맞아, 그럼 두 번째 규칙은 네가 정해 봐.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봄이한테 말해줄래?"


아이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쁘게 말하는 거! 그걸 규칙으로 하자!"


아이에게 다시 미안했다. 아이는 언제나 예쁜 말이 듣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가 좀 떼를 부려도, 엄마가 또 아빠가 저를 다독여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제안에 얼른 좋다고, 정말 좋은 규칙이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 소리 지르지 말고, 예쁘게 말하는 가족이 되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아이와의 약속을 깨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게, 앞으로 내 육아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 규칙들이 생겨날지 모르겠지만, 오늘 아이와 처음으로 만든 두 개의 규칙을 우리 집 가훈 삼아 잘 지켜나가야겠다.


꼭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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