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말할 거야.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by 진아

요즘 두 아이에게 매일 꼭 한 번은 하는 말이 있다.


“사랑아, 엄마 아들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

“봄아, 엄마 딸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


어떤 상황이나 분위기를 봐서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뜬금없이 아이들을 끌어안거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불쑥 고백하듯 내뱉는 말이다. 그러면 아직 두 돌이 채 안 된 둘째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아는지 모르는지, “응~”하고 제 할 일을 하고, 네 살 난 첫째는 머쓱하게 씩 웃는다.


한 이삼 주쯤 된 것 같다. 의식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되려면 최소 21일은 해야 한다는데, 딱 삼 주쯤 지나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자연스럽게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날에는 하루 한 번이지만, 어떤 날에는 하루 서너 번도 불쑥불쑥 고백하듯 하는 말에 아이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그런가 보다 한다. 아직까지는 내 말에 대한 대답으로 “엄마도 내 엄마라서 고마워.”라는 말을 듣지는 못했다.(그 말이 듣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고맙다’는 말뿐만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도 의식적으로 자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당연해서, 일부러 애쓰지 않으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놓치게 되었다. ‘당연히 사랑하니까, 내가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든 것이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니까’ 내 마음속에는 사랑이 가득하지만 아이들에게 그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이전에 비해 아이들에게 사랑 표현을 확실히 덜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젖먹이였을 때는 ‘사랑해, 고마워’ 같은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했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순간이 많다 보니, 살 부대끼는 순간마다 가슴이 벅차올라서 의식하지 않더라도 다정한 말이 마구 나왔다. 보들보들한 아이의 살결과 내 살결을 가만히 맞대고 있으면, 특히나 그 자세로 아이가 내 품에서 새근거리고 자거나 꼴깍꼴깍 예쁘게 먹거나 방긋방긋 눈 맞추고 웃을 때면 반사적으로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품에 안고 있을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자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의 횟수가 덩달아 줄었다. 저와 나의 영역에 아주 흐릿하게나마 경계선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 말하던 아이에게 어느 날은 잠자리에 누웠을 때 한 번쯤 말하는 걸로 그치기도 했다.


‘아, 이렇게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애정표현에는 무뎌지고, 잔소리는 늘어가는 거구나.’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아이들과 안도현 님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시를 보며 감동하는 아이들의 눈빛에 압도되어 잠깐 문제집을 접고 아이들과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갔고, 문득 나는 아이들과 부모님 사이에 애정 표현이 얼마나 오고 가는지 궁금해졌다.


스며드는 것(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아이들에게 부모님과 제일 최근에 안아본 게 언제인지 물었더니,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여자아이들은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징그럽게 안길 뭘 안아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님의 생일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 메시지로 보내본 적은 있지만 말로 해본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느냐고 물었더니, 공교롭게도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해본 적이 있다던 아이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아이들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 수업 장면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 수업을 하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칠 만큼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분이셨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한치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고,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에도 한 번도 균열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모녀는 사랑 표현에 인색한 사람들이었다. 사랑한다 표현하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워 마음에만 담아두었다가 특별한 날 편지를 쓸 때면 못다 한 사랑 표현을 담뿍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그 수업을 하면서 나와 엄마도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서로를 힘껏 안아본 기억도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었다. 그 수업 이후로 애써보려 했지만, 표현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참 잘되지 않았다.


그 아쉬움이 오래 남아있었던 걸까. 나는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는 순간에 이른 다짐을 했었다. 넘치도록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사랑을 말로 몸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그 다짐을 한 지 이제 겨우 4년쯤 지났을 뿐인데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던 것이다.




오늘은 무슨 연유인지 둘째가 종일 짜증을 부리며 몇 시간 동안 진정될 만하면 또 울고, 또 울기를 반복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도 봤다가, 아이에게 버럭 화도 냈다가, 우는 아이를 못 본 척 뒤돌아서서 마음 수양도 했다가…….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안 되길래 그냥 품에 와락 안아버렸다. 처음에는 싫다며 버둥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져서는 훌쩍거리며 내 품에 기댄 아이에게 말했다.


“봄아, 아까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큰소리를 냈어. 정말 미안해.............(후우) 하지만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해.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했다. 아주 솔직하게는 종일 그렇게 울고 짜증 부리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첫마디가 정말로 나오질 않았다. 몇 번이나 침을 꼴깍 삼키며 마음을 다스리고는 그냥 뱉어보자는 심정으로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안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이내 조용해졌다. 오늘 하루 아이는 뭔가 모르게 사랑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한 달 뒤에도 일 년 뒤에도 그렇게 십 년 뒤에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힘주어 안아줄 거다. 사랑한다는 말이, 진심으로 안아주는 손길이 습관이 되도록 노력할 거다. 그러기 위해 분위기나 상황 같은 거 고려하지 않고 아이와 눈 마주칠 때, 아이가 나를 부를 때, 아이와 함께 놀다가, 그냥 뜬금없이 불쑥 “사랑해, 고마워”라고 말할 거다. 언젠가 아이가 더 많이 자라더라도, 그래서 어른이 되더라도 저나 나나 “사랑해, 고마워” 말하며 안아주는 게 어색하지 않도록, 낯설지 않도록.

덧붙여.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한 엄마에게도 언젠가는 사랑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조금씩 연습해야겠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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