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려다 도리어 내가 위로를 받다.

여전히 너무 어린 첫째와 둘만의 데이트를 하다.

by 진아

요즘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랑이를 위해 신랑이 봄이를 보고, 내가 사랑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른 아침부터 나서면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아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부터 근처 공원 놀이터까지 동네 모든 놀이터를 돌며 신나게 뛰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독차지한 원조 엄마 껌딱지는 엄마랑 더 놀겠다며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그럼 엄마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설득해서 차에 태웠다.


"사랑아, 아이스크림 먹기 전에 엄마랑 드라이브할까?"

"드라이브?"

"응. 사랑이 세 살 때 엄마랑 타요 차고지 갔던 거 기억나?"

"아니. 기억이 안 나."

"엄마랑 둘이서 갔었어. 타요 버스도 많이 보고, 가는 길에 포클레인이랑 덤프트럭도 봤었는데?"

"가자. 좋은 생각이야. 엄마, 빨리빨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버스 종점 차고지가 있다. 파란색 버스면 모두 타요로 통하는 아들은 버스차고지에 가자니 흥분해서는 빨리 차를 몰라고 안달이 났다.




하늘은 가을 하늘 못지않게 푸르고, 지천에 핀 봄꽃도 너무 예뻤다. 공기도 상쾌하고, 햇살도 따사로웠다. 무엇하나 아쉬운 것이 없었다. 5분쯤 달렸을까. 사랑이는 이내 "엄마, 나 잠 와."라고 하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는 버스 차고지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랑이가 깨길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에서 깬 사랑이는 눈을 뜨자마자 타요는 어딨냐고 물었다. 차에서 내려 아이를 안고 버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잘 보이는 자리에 섰다. 5킬로짜리 고구마 한 상자도 무거워서 못 들면서 14킬로짜리 아들은 거뜬히 안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안고 서서는 버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다들 꽃놀이를 간다고 바쁜데, 우리 둘은 타지도 않을 버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서있으니 좀 우스웠다. 그래도 사랑이가 좋아하니, 나에게는 꽃구경보다 더 신나는 일이었다. 버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한 이십 분쯤 봤을까,


"엄마! 우리 아이스크림 먹기로 했잖아."

"아, 맞다. 그럼 이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볼까?"

"응! 좋아!"


아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아진 게 느껴졌다. 집 근처로 돌아와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이에게 건넸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봄이 옆에 있다 보니 진짜 다 키웠다 싶었었는데 오늘따라 사랑이가 아주 작은 아기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면 겨우 4살인데, 이제 겨우 36개월이 되었는데, 여전히 자기 마음과 생각을 언어로 다 표현하지도 못하는 아기인데 그동안 너무 큰 아이 취급을 한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너무 열심히 놀아서 다리가 아프다는 사랑이를 업고 집으로 왔다. 욕조 가득 따뜻한 물을 받아 둘이 앉아서 놀았다. 찬바람을 맞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후 따뜻한 물에 앉아서 그런 건지, 너무나 오랜만에 사랑이와 큰소리 내지 않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서 그런 건지 유난히 욕조안의 물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요즘 사랑이는 내 머리를 감겨주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오늘도 엄마 머리는 자기가 감겨준다고 절대 엄마가 머리 감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어설프지만 정성스럽게 샴푸를 바르고, 린스를 바르는 아이의 손길이 너무도 따뜻했다.


저녁 무렵 신랑과 사랑이, 봄이까지 넷이서 함께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랑이가 나에게 뛰어들어 폭 안기더니

"부비부비"

라며 제 얼굴을 내 얼굴에 비비기 시작했다.

"엄마, 부비부비, 엄마가 너무 좋아서 부비부비 하는 거야."

그동안 나름대로 사랑이에게 표현한다고 했지만, 봄이와 사랑이를 동시에 챙기면서 아무래도 내 마음은 더 어린, 아직 아무것도 혼자 하지 못하는 봄이에게로 쏟아진 순간들이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겨우 돌이 지난 봄이는 아직 훈육의 시기도 아니어서 그저 예쁘기만 했다. 그러니 봄이를 보는 내 눈에서는 언제나 꿀이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는 봄이 곁에 놓고 보면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고, 훈육을 해야 하는 일들도 종종 있어서 마냥 예쁜 눈으로만 바라보지 못했다. 그걸 예민하고 섬세한 사랑이가 몰랐을 리 없다. 아마 너무 잘 느껴져서 그동안 봄이가 더 밉고 마음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사랑이와 둘만 있는 몇 시간 동안은 사랑이에게 큰소리 낼 일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나 평화로웠다. 사랑이도 느꼈을 것이다. 평소보다 엄마의 눈빛이 더 따뜻하다는 것을.



사랑아, 미안해. 엄마가 잘하려고 애쓰는데, 엄마도 아직 너무 부족한 게 많아서 마음처럼 잘 안 되는 순간들이 많아. 너도 아직 아기인데... 엄마가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깊은 사랑으로 너를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 사랑해, 내 첫 번째 보물♡

엄마의 모든 첫 번째 순간을 함께 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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