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보자, 아니네. 상어 엄마는 아기를 뱃속에서 오래 품고 있고, 세상에 내어놓고 나면 떠난대.”
“그럼 아기 상어는?”
“아기 상어는 태어나자마자부터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 대.”
“…….”
“엄마, 아기 캥거루는 엄마가 돌봐준대?”
“응, 아기 캥거루는 태어날 때 너무 작고 약해서 엄마 캥거루가 주머니에 넣고 잘 돌봐준대.”
“계속? 계속 엄마 배주머니에서 산대?”
“아니, 그건 아니래.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자라면 혼자 힘으로 살아간대.”
“…….”
“엄마가 돌봐준대? 떠나지 않는대?” 는 자연관찰 책을 읽어줄 때마다 나오는 사랑이의 단골 질문이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바다생물이든, 육지생물이든, 곤충이든, 새이든, 종류에 관계없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룬 책을 집어 들 때면 언제나 그 질문에서부터 책 읽기가 시작된다.
질문의 시작은 사랑이가 33개월쯤 되었을 때, 자연관찰 책에서 바다거북과 연어 관련 이야기를 읽고 난 뒤부터였다. 바다거북은 알을 낳을 때면 모래 위로 올라와서 구덩이를 파고는 알을 낳은 뒤, 모래를 잘 덮어두고는 유유히 바다로 돌아간다.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 뒤, 알을 낳고 나면 이내 죽는다. 사랑이는 바다거북과 연어 이야기를 처음 읽은 날, 눈물을 흘렸다. 33개월짜리 꼬맹이가 엄마 없이 태어나는 바다거북과 연어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저에게는 아기를 돌보지 않고 떠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어미들의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나 보다.
아이를 키우며 자연관찰 책을 무척 많이 읽게 되는데, 그러면서 전에 없던 동물 상식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공룡의 이름만큼이나 새롭게 알게 된 동물들의 생태가 얼마나 신비한지 모른다. 특히나 동물들이 새끼를 낳아 키우는 방식은 정말 다채로워서 나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냥 새끼나 알을 낳아 얼마간 품었다가 세상에 내어놓는 게 다 일 줄 알았는데, 각 종이 가진 특성과 생태 환경에 따라서 저마다의 방식이 있었다.
신비로운 동물의 세계
상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알을 낳기도 하지만, 새끼가 어미 배 속에서 알을 깨고 나와 어느 정도 자란 뒤에 바깥으로 나오는 ‘난태생’도 있다. 난태생인 상어의 경우 어미 상어가 무려 24개월을 뱃속에서 키운다고 한다. 대부분의 상어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탯줄을 자르고 바로 바닷속 생태계에 적응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하니, 뱃속에서 더 품어 키워내 보내는 난태생으로 진화한 것이 이해가 된다.
바다에 살지만 폐호흡을 해야 하는 돌고래의 경우 어미는 새끼를 낳자마자 모든 힘을 다해 새끼를 물 위로 들어 올린다. 새끼 돌고래가 호흡을 하지 못하면 이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미는 새끼를 낳는 고통을 겪고도 남은 힘을 모두 쏟아 새끼의 생존을 돕는다.
펭귄은 추위 속에서 갓 태어난 새끼를 지키기 위해 먼바다로 먹이를 구하러 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 중 한쪽(대개는 어미)이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 아기 펭귄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추위에 떨지 않도록 남은 한쪽(대개는 아비)은 아기 펭귄을 발 위에 올려놓고 품어준다.
가시고기는 어미가 알을 낳고 나면 떠나거나 죽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남은 아비가 알을 지키는데, 새끼들이 부화할 때쯤 되면 아비 가시고기는 힘이 다 빠져 죽는다. 그러면 부화한 새끼 가시고기들이 아비의 몸을 먹으며 생존한다.
동물들은 새끼를 무사히 낳기 위해, 또 어린 새끼를 지키기 위한 각종 방법을 동원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자손을 번식하는 것은 본능이지만, 낳은 새끼를 지켜내는 부모들의 모습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눈물겨웠다.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든 작디작은 개미 한 마리든 각자의 방식으로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한 과정은 고군분투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아이의 눈에는 그저 작은 새끼에게 엄마의 보살핌이 있는가, 없는가만 보였겠지만 엄마인 내 눈에는 그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보였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먼바다로 먹이를 찾아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나, 제 살을 내어 새끼를 먹이는 모습에서 동물이지만 같은 부모로서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엄마, 엄마는 나 지켜줄 거야?”
“그럼, 당연하지.”
“계속?”
“응,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곁에서 지켜줄 거야.”
“어른 되면은?”
“그럼 너도 엄마 아빠를 떠나서 살아야겠지?”
“싫어!!!”
“엄마랑 아빠도 할머니, 외할머니랑 따로 살지?”
“응”
“그러니까 사랑이가 엄마 아빠처럼 큰 어른이 되면 사랑이도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해. 동물친구들도 봐. 자라서 어른 호랑이, 어른 캥거루, 어른 얼룩말이 되면 혼자 힘으로 살아가잖아.”
“싫어. 나는 엄마랑 평생 같이 살 거야!!”
목덜미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네 살 꼬맹이의 살 냄새가 뭉클했다. 여전히 제 세상에는 엄마인 내가 전부였다.
“그래, 그래, 엄마랑 평생 살자. 나중에 너 딴말하기 없기다?”
“무슨 말?”
“그런 게 있어.”
그 ‘무슨 말’을 내뱉을 날이 머지않아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수많은 날동안 아이를 품에 안고 킁킁거리며 아이의 체취를 맡을 생각을 하니 문득 행복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올 아이의 독립을 힘껏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물들이 제 새끼에게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온몸 바쳐 가르치는 것처럼, 내 아이가 제 삶을 보다 주체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남은 생을 바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아이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마음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며, 속엣말을 했다.
‘사랑아, 네가 세상을 향해 조금씩 손을 뻗고 발을 내딛을 때 주저함이 없도록, 지금 엄마가 더 힘껏 안아줄게. 언제나 엄마를 든든한 백그라운드 삼아 오직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렴. 그렇게 네가 엄마 곁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갈 때에도 엄마는 언제나 네 손 닿는 곳에, 네 눈길 머무르는 곳에 있을게. 그게 엄마의 남은 생에서 해야 할 일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