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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03. 2021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환경학 최고의 고전이라는 『침묵의 봄』은 생생한 사례를 기반으로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화학 물질’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로, 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살충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태계, 아니 그보다 인간의 삶에 해를 끼쳐 ‘해충’이라고 분류된 곤충들을 ‘박멸’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살충제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해왔지만, 그 결과는 인간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박멸’하고자 했던 곤충들은 화학 물질에 대한 내성을 획득했다. 그로써 더 강한 존재가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개체수를 늘려 갔다. 도리어 살충제에 오염된 곤충 혹은 지하수를 먹은 다른 야생동물들과 살충제의 포화를 맞은 식물과 동물(가축까지도)들은 그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살충제에 대한 경고나 단속을 강화하기는커녕 더 강한 살충제를 개발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확대해왔다. 더 강한 살충제가 살포될수록 해충 ‘박멸’의 길은 멀어졌고, 그 외의 동식물을 비롯하여 심지어 인간에게까지 살충제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씩 ‘생물학적 방제(천적을 활용하거나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 등)’에 대해 관심을 둔 국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가 발암물질, 잔류농약 관련 문제인데, 이들 역시 모두 살충제와 그 성분이 동일한 것들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과 비교해봐도(불과 이십 년쯤 전이지만), 과거보다 이런 화학 물질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더 심각해진 듯하다. 주변에만 봐도 아이의 친구들 중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이 꽤 많고, 난임이나 불임으로 고통받는 친구들도 점점 더 늘고 있다. (피부병이나 불임 문제는 새를 비롯한 동물들에게서 이미 발생한 문제다.) 한때 ‘암’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질병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질병이 되었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편한 쪽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중심에 과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과학의 발달로 인해 그 부작용을 검증할 수 없는 약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그것에 너무도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갈 날이 꽤 많이 남아 있는 한 인간으로서 화학 물질의 포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막막한 마음마저 들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6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책에서 다루는 핵심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해결은커녕, 더 나빠졌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과학자도 아니고, 제품의 개발자도 아닌, 일개 소비자일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결국은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길뿐일 것이다.


그나마 아이를 키우면서 친환경 제품이나 유기농 음식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제품인데 친환경이나 유기농 인증 마크가 붙었다는 이유로 값이 두 배 이상 비싸지니, 선뜻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값이 싸다는 이유로, 잠깐만 사용할 물건이라는 이유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계속해서 구입한다면, 환경 문제는 계속해서 심각해질 것이다. 값을 지불하더라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화학물질을 최대한 배제한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노력만이 결국은 생산자의 태도를 바꾸는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물론 요즘은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놓고는 실상은 그렇지 않아 소비자의 공분을 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리감독이 철저해져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이 내용도 『침묵의 봄』에 나온다. 대체 60년 동안 정부에서는 무엇을 한 것인지.)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씁쓸했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몇 마리의 새조차 다 죽어가는 듯 격하게 몸을 떨었고 날지도 못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 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 등 여러 새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중략)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 (26쪽~27쪽)     


'침묵의 봄'을 야기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생태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신인 것처럼 행동해왔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생물이라고 생각되면 '박멸하는' 습성이 점점 저 널리 퍼지고 있다.(152쪽)’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수많은 생물들의 생존을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에 따라 결정해온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새롭고 상상력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 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갈 때, 곤충과 인간이 이해할 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중략)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응용 곤충학자들의 사고와 실행 방식을 보면 마치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그렇게 원시적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찍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을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325쪽)     


곤충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는 결국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박멸'할 끔찍한 무기들을, 돈과 시간을 투자해가며 '스스로' 개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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