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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07. 2021

『아무튼, 목욕탕』(정혜덕)

피곤이 밀푀유 나베처럼 차곡차곡 쌓인 저녁 8시에 목욕탕에 가면 침침한 눈이 순정만화 주인공의 다이아몬드 박힌 눈망울로 바뀐다. 어깨에 얹혔던 생존과 생계의 짐은 간 데 없고 부드럽게 돌아가는 목을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운 좋으면 마음의 괴로움과 영혼의 그을음까지 씻을 수 있다.
(‘온탕 애호가쯤으로 해두자’ 중)          


저녁 8시에 목욕탕에 가본 사람은 안다. 하루치, 아니 어쩌면 며칠치 피로가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어느 평일 저녁 8시, 왜 목욕탕에 가야 하는지, 목욕탕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들어가던 발걸음과는 차원이 다르게 가벼워지는지.

     

저자는 스스로를 ‘온탕 애호가쯤’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를 단지 ‘애호가’ 정도로 표현하기엔 영 부족하게 느껴졌다. 저자에게 목욕탕, 특히나 온탕은 온몸의 피로를 푸는 곳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곳이며,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기도 했다. 나아가 나이 듦에 대해 성찰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며,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고 즐기다는 뜻의 ‘애호’ 정도로는 목욕탕을 향한 저자의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목욕탕은 지친 마음을 쉬게 할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치료'하기에 적합했다. 탕에 들어앉은 지 10분쯤 지나면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그럴 때 조용히 눈물을 같이 흘려도 괜찮았다. 얼굴이 좀 벌겋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보일 테니까. 목욕탕에서는 몸뿐 아니라 마음에 찌든 시커먼 때를 자연스럽게 내보낼 수가 있었다. ('목욕탕에서  살아나기' 중)


지금까지 목욕탕에 다니는 동안 나와 다른 인종과 마주친 적은 없다. 만일 금발의 여인이 내 동네 목욕탕에 들어온다면 그녀에게 쏟아지는 시선, 특히 하반신에 꽂히는 시선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중략)

맨몸으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사회적 지위나 소유의 많고 적음 따위는 수증기처럼 흩어진다. 목욕탕에서는 몸의 나이만 두드러진다. 어린 몸, 젊은 몸, 늙은 몸. 어떤 몸이든 종국에는 늙게 되어 있다. 몸에는 인생의 자취가 새겨진다. ('어린 몸, 젊은 몸, 늙은 몸' 중)     


그런데 여사님은 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화장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밥을 드셨다. 나 때문에 밥을 채 넘기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여사님이 쾌적하지 못한 곳에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그분을 그렇게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다 여사님의 세신 포스)          




읽는 내내 거의 2년 동안 발길을 끊고 산 목욕탕이 그리워 온몸이 근질거렸다. 어느 목욕탕도 그 생김새는 얼추 비슷한 듯했다. 세밀한 묘사를 읽어가다 보니 내가 다녔던 목욕탕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목욕탕마다의 특징은 있을 테니, 부분 부분 다른 지점들은 있었지만 그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도 소싯적에 목욕탕 깨나 다녀본 사람이어서인지, 저자가 그리는 여러 목욕탕의 모습이 마치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각종 탕의 모습 하며, 세신 할 수 있는 곳들의 구조, 탈의실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달 목욕’하는 분들의 목욕 바구니, 작업복(저자는 세신사분들이 입고 있는 란제리는 ‘작업복’이라고 표현했다)을 입고 있는 세신사분들과 자동으로 등을 밀어주는 기계(이건 부산 경남지방에만 있는 것이다. 나는 부산 출신이라 이 기계가 너무도 익숙하다)까지, 그 묘사에는 생생함을 넘어 저자의 애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주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님처럼 그의 시선이 닿은 목욕탕 곳곳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대상들로 가득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쓰고 있는 나의 첫 책에도 목욕탕과 관련된 추억이 나온다. 나에게 목욕탕은 치유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추억의 공간에 가깝다. 엄마와 외할머니, 동생과 나, 이렇게 네 여자가 살을 부대끼며 서로의 묵은 때를 박박 벗겨주던 곳. 그래서 엄마와의 기억을 쓰는 첫 책에서 목욕탕 이야기를 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따스하고 좋았던 기억들 덕분에 독립을 한 이후에도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면, 나도 저자처럼 그렇게 목욕탕을 찾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탕에 들어앉은 듯 마음이 뜨끈해지니까.           




『아무튼, 목욕탕』은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라는 ‘아무튼 시리즈’의 모토에 꼭 맞는 에세이였다.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읽었는데, 다른 ‘아무튼’도 궁금해지는 걸 보면 꽤 괜찮은 에세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병든 세상을 사는 현대인은 조금씩 ‘환자’다. 병원 이름이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출입을 통제하는 시설에 갇혀 신경을 느슨하게 만드는 약을 시간 맞춰 먹어야 하는 이들만 환자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간수하기가 쉽지 않다. ('목욕탕에서 살아나기' 중)          


공감한다.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몸과 마음을 간수할, 저마다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나에게 처방전이 될 ‘아무튼’은 무엇일까. 나를 온전히 나답게 하는 그 무엇, 한 권의 책으로 꼬박 엮어낼 만큼 사랑하는 그 무엇.


이 밤에 번뜻 떠오르는 건, 역시나 책과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아무튼, 글쓰기 그리고 아무튼, 독서다.




덧붙임. 요즘 책 원고 작업 때문에 브런치에는 겨우 독서노트만 올리고 있어요. 쓰고 싶은 거리가 그득한데.. 퇴고 작업 끝내고 나면 그동안 못다 한 육아 이야기, 마흔 이야기 다아 풀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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