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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28. 2021

『나의 아름다운 이웃』(박완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박완서의 작품을 하나쯤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초등 국어 교과서부터 고등 문학 교과서까지, 몇 편이나 수록되어 있을 만큼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닌 ‘여성’ 작가이다. 지금이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이 워낙 많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특히나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당대 여성 작가는 거의 없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저자가 등단 후 10년 안에 썼던 콩트를 묶은 소설집이다. 콩트는 ‘단편 소설보다도 더 짧은 글에 인생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유머, 풍자, 기지를 담은 소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에는 무려 46개의 콩트가 들어 있다.     


‘콩트를 쓰는 맛은 방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 실린 콩트들은 모두 소박한 사람들(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것들이다. 1970년대에 발표된 콩트들이라 단어나 표현, 혹은 배경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꽤 있었다. 하지만 읽어가는 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글의 소재가 2021년인 지금에 대놓아도 전혀 낯설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남녀의 연애 이야기, 결혼을 앞둔 남녀 사이의 갈등, 결혼 생활의 권태로움, 고부간의 갈등, 부동산 문제, 세대 차이, 워킹맘의 현실, 여성에게 드리운 유리천장의 그늘 등, 소재만 놓고 본다면 지금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나 자주 다루어진 소재가 ‘여성’과 ‘결혼’이었는데, 아무래도 저자의 생활과 관심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또 이 콩트들이 대체로 대기업 사보의 문예란에 실린 것이라고 하니, 매체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사보의 문예란에서 전쟁이나 일제 강점기 등을 다룰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콩트’라는 문학 갈래 자체의 특성 때문에도,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를 다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46개의 콩트 모두 내가,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충분히 경험할 만한 일상적인 일들을 담고 있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때론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는 삶의 단면들을 마주하며, 자꾸만 책의 제목을 곱씹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서 그대로 차용한 것일 수도 있으나, 단순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수많은 콩트의 제목 중에서 굳이 그 제목을 대표로 골라낸 것은 저자의 의도가 있으리라.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빛나고 귀한 것들만 ‘아름다운’ 것일까. 저자는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며, 평범한 고민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렇게 작고 소박한 것이 진짜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덤으로,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으면서 ‘박완서’라는 작가가 전에 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읽어온 그의 소설은 대체로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그 여자네 집』, 『엄마의 말뚝』, 『나목』 등이었기에 그의 삶은 나와 다른 어떤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만큼 그는 내게 ‘아득히 먼 당신’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역시도 나와 같이,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여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1970년대 소설 속 문장이라기에는,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


나는 공허했다. 고생 고생해서 내 집을 장만하고 나니까 살림 재미는 이제부터라는 설렘은 고사하고 몸과 마음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공허했다. (「마른 꽃잎의 추억 2」)   


혼자 살 수 있는데도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결혼은 비로소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지 혼자 살 수가 없어 먹여 살려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결혼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후남이의 생각이었다.
후남이는 결혼하길 원했으나 예속되길 원하진 않았다. 사랑받고 사랑하길 원했지 애완받고, 애완받기 위해 자기를 눈치껏 변경시키고 배운 걸 무화시키길 원치는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3」)     


욱이의 공부는 다 그들 선생님이 할 탓이지 욱이 탓은 아니었다. 욱이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들 선생님이 넣어주길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음식을 받아먹으려 해도 입을 벌려야 하거늘 하물며 공부를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쉽고 편하지만은 않겠거늘 욱이의 부모는 그저 욱이는 편하고 남들만이 애써주길 바랐다.(「일식(日蝕)」)     


여자란 여자로 길러지는 걸까?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는 걸까?(「아파트 열쇠」)     


이렇게 해서 무를 싸게 사는 여자가 값비싼 밍크 목도리라도 두르고 있으면 나는 속으로 주체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노파」)     


엄마는 파리도 모기도 그 밖의 못된 것은 다 그 무허가 집들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집에 사는 아이들과 누나나 내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불만입니다.(「할머니는 우리 편」)     


영미가 꿈꾸는 결혼은 서로 쥐고 쥐이는 결혼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결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서로 어른이 돼야 할 것 같았다.(「어떤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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