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허했다. 고생 고생해서 내 집을 장만하고 나니까 살림 재미는 이제부터라는 설렘은 고사하고 몸과 마음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공허했다. (「마른 꽃잎의 추억 2」)
혼자 살 수 있는데도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결혼은 비로소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지 혼자 살 수가 없어 먹여 살려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결혼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후남이의 생각이었다.
후남이는 결혼하길 원했으나 예속되길 원하진 않았다. 사랑받고 사랑하길 원했지 애완받고, 애완받기 위해 자기를 눈치껏 변경시키고 배운 걸 무화시키길 원치는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3」)
욱이의 공부는 다 그들 선생님이 할 탓이지 욱이 탓은 아니었다. 욱이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들 선생님이 넣어주길 기다리면 되는 거였다. 음식을 받아먹으려 해도 입을 벌려야 하거늘 하물며 공부를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쉽고 편하지만은 않겠거늘 욱이의 부모는 그저 욱이는 편하고 남들만이 애써주길 바랐다.(「일식(日蝕)」)
여자란 여자로 길러지는 걸까?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는 걸까?(「아파트 열쇠」)
이렇게 해서 무를 싸게 사는 여자가 값비싼 밍크 목도리라도 두르고 있으면 나는 속으로 주체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노파」)
엄마는 파리도 모기도 그 밖의 못된 것은 다 그 무허가 집들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집에 사는 아이들과 누나나 내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불만입니다.(「할머니는 우리 편」)
영미가 꿈꾸는 결혼은 서로 쥐고 쥐이는 결혼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결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서로 어른이 돼야 할 것 같았다.(「어떤 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