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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29. 2021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앨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진정으로 그리워할 만한 스승이 있는가? 당신을 있는 그대로 귀한 존재로, 닦으면 자랑스럽게 빛날 보석으로 봐준 그런 스승이 있는가?” (에필로그 중)  

   

저자인 미치 앨봄에게는 그런 스승이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문턱에 가닿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간 이, 바로 모리였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출간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친정집에는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초판본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있다. 언제 그 책을 읽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읽은 후 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책이었다. 그만큼 어린 나에게도 많은 울림을 주었던 모리의 가르침을 서른여덟이 되어 다시 읽었다. 전에는 보지 못한, 보았더라도 와 닿지 않았을 수많은 문장이 보였다.           



한 신문사의 유명한 스포츠 기자였던 미치는 어느 날 갑자기 신문사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무기한으로 일거리를 잃게 된다. 미치에게는 투병 중인 동생이 있는데, 동생은 미치의 도움을 거부하며 타국에서 홀로 투병 생활 중이었다. 동생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데다,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기 위해 미친 듯이 앞만 보며 달려온 생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미치는 삶의 방향을 잃는다.

그때 우연히 텔레비전의 한 토크쇼에서 자신의 대학 시절 은사(恩師)인 ‘모리’를 보게 되고, 그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된다. 미치는 대학 시절 모리와 사제지간이긴 했지만, 단순히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까운 관계였다. 졸업 후 자주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삶에 쫓겨 모리를 잊고 살았던 미치는, 토크쇼에서 죽음을 앞둔 모리를 보고 충동적으로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시작된다.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둔 노(老) 교수 ‘모리’와 오랜 제자 ‘미치’ 사이의 대화, 두 사람은 이 책을 ‘마지막 논문’이라고 불렀다. 주제는 ‘인생의 의미’였다.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 있는 삶’이라는 열 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사람은 열네 번을 만났고 그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로써 모리의 가르침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에게까지 온전히 닿을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하기에 모리는 너무나 밝고 긍정적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기는커녕, 스스로의 삶을 ‘훌륭한 삶’이라고 칭하며 남은 시간을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했다. 수많은 제자와 여러 사람들이 모리를 찾아왔고 모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맞았다. 함께 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겼고, 끝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진 상황에서도 충만한 행복을 느꼈다.     

 

모리의 나이는 이미 여든에 가까웠다. 하지만 늙었다는 이유로 죽음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모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살아온 모든 순간에 후회보다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말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 나아가 공동체까지 사랑으로 아울러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하며(104쪽), 어떤 순간에도 안전한 버팀목에 되어줄 가족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152쪽)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결국 다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하며, 우리가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인류라는 대가족을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231쪽). 모리 스스로도 죽는 순간까지 가족과 제자들을 비롯하여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사랑했고, 자신을 도우려 애쓰는 모든 이들의 손길을 기쁘게 받았다.      

 

읽는 동안 삶을 대하는 모리의 태도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그런 모리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던 미치에 대한 부러움이 교차되었다. 마치 ‘미치’가 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죽음 앞에 허물어져 가는 ‘모리’가 아닌, 죽음조차도 삶의 일부인 양 받아들이는 ‘모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한 문장을 이어 말하기도 힘들어, 몇 번의 기침과 가래를 뱉은 후에야 겨우 말을 이어가던 ‘모리’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느꼈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끝으로, 모리는 24시간만 건강해질 수 있다면 그 하루를 이렇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롤 케이크와 홍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수영하러 가겠어. 그런 다음 찾아온 친구들과 맛 좋은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아 한 번에 한둘씩만 찾아온다면 정말 좋겠군. 그래야 그들의 가족과 관심사에 대해 온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  …… 그런 다음 산책을 나가겠어.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가서 여러 가지 나무도 보고 새도 구경하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자연에 파묻힐 거야.…… 저녁에는 모두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싶네. 아니, 오리 고기를 먹을까? 난 오리고기를 무척 좋아하거든. 그런 다음 나머지 저녁 시간 동안에는 춤을 추고 싶네. 거기 있는 멋진 파트너들과 지칠 때까지 춤을 춰야지. 그리고 나서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254쪽~255쪽)


소박하고 평범한 하루, 죽음을 앞둔 마지막 24시간을 가장 완벽하게 보내는 방법이었다. 매일의 일상을 누리면서도, 심지어 그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감사를 잃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나를 다시 일깨우는 말이었다.


정말로 만약에, 나에게 남은 시간이 24시간뿐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하겠어. 차린 건 별 없어도 함께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가야지. 개미도 보고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그러다 아이들이 짜증을 부리더라도 그저 가만히 안아줘야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물놀이를 가장한 목욕을 하고, 뽀송하게 마른 새 옷을 꺼내 입혀야지. 물론 나도 그럴 거야. 함께 블록을 만들고 책을 읽겠어.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잘 놀다가도 싸우고 떼를 쓰겠지. 그때마다 품에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야. 퇴근한 남편과 함께 소박한 저녁을 먹고,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집 정리를 할 거야.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남편에게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고마웠다고 인사할 거야. 불을 끄고 두 아이를 양 팔에 끌어안은 채 사랑한다고, 엄마의 아들딸이어서 너무도 고맙다고 인사하며 입을 맞출 거야. 그리고 남편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한 뒤,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


쓰면서 깨달았다. 내일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걸.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말 24시간이 남았을 때, 후회와 절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리라는 걸.




* 마음에 새길 문장

“사랑을 받아들이게. 우리 모두는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지.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레빈이란 현명한 사람이 제대로 지적했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라고 말이야.”(104쪽, 세상 첫 번째 화요일 )     

(전략)그러나 교수님은 부드러운 면 셔츠만 입었고 셔츠는 늘 교수님의 마른 몸에 헐렁하게 걸쳐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는 아래로 축 처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매번 손을 뻗어 마이크를 고쳐 달아야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교수님은 즐거워하는 듯했다. 그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이와 같은 물리적인 애정이 필요했다.(151쪽, 가족-다섯 번째 화요일)     

“우리가 이야기한 어떤 주제보다도 ‘가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사실 가족 말고는 사람들이 딛고 설 바탕이나 안전한 버팀목이 없지. 병이 난 이후 그 점이 더 분명해졌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 애정과 염려가 없으면 많은 걸 가졌다고 할 수 없어.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152쪽)     

“세상 사람들은 젊음을 강조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들어 보게. 젊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해질 수 있는지를 나는 잘 알아. 그러니 젊다는 게 무조건 멋지다고는 말하지 말게. 젊은이들은 갈등과 고민, 결핍이라는 느낌으로 늘 시달리고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다며 나를 찾아오곤 한다네. 너무 괴로워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면서 말이지.”
(중략)
“미치, 난 나이 든다는 사실을 껴안는다네.
“……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지.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덕분에 더욱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네.”(184쪽~185쪽, 나이 드는 두려움 – 일곱 번째 화요일)     

교수님은 누구와 함께 있으면 그와 완전히 시간을 공유했다. 그 사람의 눈을 응시하고 세상에 오직 그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중략)
“나는 다른 사람과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건 상대방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처럼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네. 지난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지. 코펠과 인터뷰를 할 일이나 먹어야 하는 약에 대해서도 생각하질 않아.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205쪽, 사랑의 지속 – 아홉 번째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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