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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29. 2021

『인디워커,이제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홍승완)

부제 : 자립을 꿈꾸는 직장인을 위한 커리어 수업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된 책이다. 아마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고 확신한다. 현재의 나는 휴직이 길어지면서 스스로 ‘직장인’이라는 인식이 아주 옅어진 상태다. 그런 데다가 직장생활을 했던 때에도,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일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이 책은 결코 내 돈 주고는 사 읽지 않는 ‘자기 계발서’ 중에서도 ‘경영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책이 아닌가.  

    

어쩌면 끝내 만나지 못했을 한 권의 책을 엉겁결에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운명이었다.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알며, 단식할 줄 압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직장인의 자립에 대한 책의 첫 문장이(심지어 프롤로그도 시작하기 전에!) 『싯다르타』의 문장이라니? 물음표가 떴다. ‘인디 워커’라는 단어도 낯선데, 첫 인용문을 보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읽어가면서야 알게 되었다. ‘인디 워커’가 이 책의 핵심 키워드라고 한다면, 『싯다르타』의 인용문은 ‘인디 워커’를 한 문장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디 워커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일하고, 뚜렷한 차별성으로 조직 안에서든 퇴직 후든 자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뜻했다. 저자는 ‘싯다르타’를 인디 워커라고 칭하며,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줄 알고(사색), 때를 기다릴 줄 알며, 소유와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인디 워커라고 정의했다.


직장인의 자립을 위한 책이라고 했지만, 기존의 수많은 책에서처럼 ‘퇴사’를 종용하지 않는다. 그 점이 읽는 내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저자는 직장이야말로, 돈을 받으면서 나의 커리어를 쌓고, 일종의 시험도 치를 수 있는 아주 좋은 ‘학교’라고 했다. 현재 직장에서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훗날 ‘자립’을 하고도 우왕좌왕할 수 있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어디에나 ‘진상’ 고객은 있고,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는 존재하며, 스스로 생각한 업무 외의 일을 맡을 확률은 높다. 그 안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잃지 않으며, 조금씩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직장을 ‘학교’ 삼아 스스로를 단련할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이 더 잘할 수 있고, 더 간절히 원하는 일을 찾아내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라고 한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아주 구체적인 ‘재능 프로필’을 만들어보고, 자신의 재능을 심화할 방법을 탐색하라고 조언한다. 재능을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하나의 직업으로 만드는 ‘창직’ 활동을 하라고 한다. 또한 직장 생활에서 오는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마니아적 취미, 오티움을 가지라고도 한다.      


책을 다 읽은 후,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6년 6개월간의 직장생활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참 아등바등했고 숨 가빴던 6년의 교직 생활은, 인디 워커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스물여섯에 첫 교원임용 시험을 쳤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이듬해에 두 번째 시험을 쳤고, 감사히도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날, 그 순간의 내 기분을 너무도 선명히 기억한다.      


‘아, 이제 더 이상은 돈 걱정도, 먹고 살 걱정도 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다!’     


그게 좋았다. 평생직업이라 불리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 앞으로의 삶에서는 직업적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게나 안심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두 글자는 그저 교단에 설 수 있는 자격 요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령 첫해, 젊은 여교사에 대한 선망과 관심 덕분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아이들은 내 말을 따라주었다. 담임도, 수업도, 그만그만 잘 해내었다. 첫 발령 학교가 도시 외곽에 위치한 곳이라, 승진가산점을 받으러 오신 50대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모두 나를 후배 교사라기보다는 ‘딸’처럼 대해주셨다. (심지어 원룸에서 자취하던 나를 위해 반찬까지 싸다 주신 분도 계셨다.) 그렇게 선배 교사들과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순탄한 학교생활을 해내는 듯했다. 2년 차에 바로 슬럼프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 번째 해에 맡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고작 서른두 명의 아이들 중 열세 명의 아이들이 사건 사고의 주인공들이었다.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우리 반의 수업을 힘들어하셨다. 어떤 선생님은 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 몇을 교무실로 데리고 오셔서는 꼭 내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나무라셨다.      


첫 학교, 첫 제자나 마찬가지였던 아이들이 예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담인인 나에게만은 호의적이던, 그 개구쟁이 녀석들을 사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행동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혼도 내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이들을 일 년 내내 각종 사건 사고를 쉴 틈 없이 일으켰다.     

 

매일 밤 울면서 잠이 들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 때처럼 수시로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다. 일요일 밤이면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의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업무도 버거웠다. 수업도 너무 많았다. 수업이 빈시간에는 업무를 해야 하는데, 수시로 아이들이 교무실에 불려 오니 업무를 할 수가 없었다. 밀린 일을 집에 싸 들고 오는 것은 일상이었고, 워라밸은 가차 없이 무너졌다. 내가 생각한 교사라는 직업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생각은 낭만이었고 착각이었다.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현실을 직시하면, 퇴사라는 단어를 떠올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겨우 2년 차에 ‘명예퇴직’할 날을 꿈꿨다.     


그 시기를 넘긴 것은 우연한 계기로 진로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진로’에 대한 관심이 한참 높아지던 때였다. 교육청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프로그램 개발 모임이었다. 그곳에서 2년간 여러 진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실제 학생들을 만나 단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교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어쩌면 훗날에 아이들과 수업이 아닌 어떤 장면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동안 진로 활동에 빠져 있던 나에게 선배 교사 한 분이 제안을 해오셨다. 수업 발표대회에 참가해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호흡이 나쁘지 않으니 한 번 해봐도 좋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다. 여전히 신규 교사와 다름없던 나에게 어떤 대회에 나간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시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수업 발표대회 참가 신청서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계획서가 통과되자, 수업지도안 심사부터 수업시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교직 4년 차에 수업 발표대회에서 3등을 했다. 사실 3등은 참가상 비슷한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성과는 있었다. 나만의 브랜드가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보고서 작성을 통해 1년간의 수업 내용을 정리해보는 귀한 경험을 했다. 그 성과로 5년 차에 고등학교로 터를 옮겼고, 그곳에서 수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했다.  

   

결혼과 임신, 출산이라는 인생의 고비와 겹치는 바람에, 고등학교에서의 활동은 겨우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짧은 6년의 교육경력이 내게 남긴 것은 매우 컸다. 벌써 휴직 5년 차이지만, 언제나 나는 다시 교단에 설 내 모습을 그린다. 그저 평생직장이라서, ‘철밥통’이라서 이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 안에서 나는, 나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비록 잠시 쉬어가는 중이지만.     




나를 온전히 표현해줄 시원한 문장 하나를 찾고 싶었다. 창밖으로 어슴푸레 해가 지고 있을 때쯤 작은 음성이 들렸다. <깨달음을 얻고, 타인과 나누는 인생>
……
<내 삶의 본질을 담고 있는 문장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화두 삼아 스스로를 관찰해보라.           


슬로우 커리어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립>이라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학교라는 틀을 벗어난 후에도, 망설임 없이 나만의 길을 찾아 나서리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저자의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오래 고민했고, 나름의 답을 내렸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답이다. 언제나 수정 보완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내 삶의 본질을 담고 있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마음에는 온기를, 사고에는 유연함을 잃지 않는 인생>                         





<책 속의 문장>(전자책으로 읽은 것이라 페이지는 따로 표시하지 않는다.)


<워라밸>이라는 유행어가 무색하게 직장인 10명 중 9명은 번아웃을 경험한다. 더 큰 문제는 퇴직 이후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죽을 둥 살 둥 달리다 보면 어느새 귀밑머리가 허옇다. 평생 시키는 일만 했으니 퇴직 후 할 수 있는 사업도 없다. 과연 빠르게 올라서는 것이 진정 성공한 커리어인가?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경주용 트랙에서 미친 듯이 질주할 필요는 없다. 경주에 지쳤다면 트랙을 벗어나 자기 속도로 걸어도 괜찮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차분히 준비한다면 자신만의 작은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커리어 또한 그렇다. 진로가 미로가 아닌 미궁이 되려면, 속도를 늦추고 중심을 향해 에둘러 갈 필요가 있다. 모든 탁월함에는 시간이 걸린다. 인디 워커는 천천히, 자기답게 잠재력을 실현함으로써 직장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벗어나 자립한다.          

우리는 거꾸로 질문해야 한다. <What>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먼저 <Why>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 나는 그 일에 끌리는지, 왜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지를 묻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서서히 드러난다. 모든 진로 탐색은 바로 그 <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은 삶의 핵심적인 요소다. 어떤 직업을 가지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쏟아야 한다. 그런데 일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치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조직이 지향하는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상황에 치여 좌고우면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삶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직장과 직업은 다르다. 직장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직업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 단, 그 직업 안에 나만의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 필살기는 한 마디로 <차별적 전문성>이다.      

그대는 <나>라는 재료로 어떤 직업을,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기 다운 일을 하는 것이다.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그 일에 몰입하면 행복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가난하게 살지는 않는다. 돈이 부족할 순 있어도 행복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가난한 것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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