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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1. 2021

차라투스트라(프리드리히 니체)

*이 독서노트는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이진우)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를 함께 읽고 작성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숙제처럼 쥐고 있던 몇 권의 책이 있다. 사피엔스, 총 균 쇠, 이기적 유전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코스모스, 지금 여기 헌법 등. 올해 들어서 한 권씩 숙제를 마치듯 읽어가고 있는 중인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중 하나였다. 『클래식 클라우드, 니체 편』이 9월의 독서모임 선정도서라 그전에 반드시 차라투스트라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갔다.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니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선뜻 와닿지 않았고, 앞뒤 흐름이 툭툭 끊어지는 듯한 서술에 읽는 내내 ‘검은색은 글자고, 흰색은 종이구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한 문장씩 겨우 읽어가던 차에,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를 만났다. 클래식 클라우드 니체 편의 저자이기도 한 이진우 교수의 책이라 더욱 끌렸다. 전에 유튜브에서 니체 관련 강의를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말씀을 아주 편안하고 부드럽게 하셔서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났다. 망설임 없이 구매를 했고, 그렇게 두 권의 책을 통해 차라투스트라를 만났다.      




‘차라투스트라’의 부제는 ‘모든 이를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입니다. 니체는 이 책을 스스로 깨우치고 문제를 해결하며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책인 겁니다.(『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 17쪽)


이진우 교수에 따르면, 차라투스트라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마치 ‘문학 작품’과도 같다고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읽는 이에 따라 자유롭게 이해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되기를 원했다고. 분명하고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은 읽기에 까다롭지 않다. 오히려 차라투스트라처럼,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 속에 해석의 자유를 남겨두는 책은 어렵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내내 그토록 난감했던 것이다.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를 기본 텍스트로 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함께 읽었다.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모든 문장을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에 인용된 부분들과 그 앞뒤로 연결되는 장면들 위주로 발췌독 했고, 이번에 미처 다 읽지 못한 부분은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두었다. 머지않은 어떤 날에 남겨둔 부분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리라 기대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흐름은 이러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서른이 되자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십 년 동안 수행을 한 뒤, 다시 시장(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끝내 차라투스트라는 ‘마지막 인간’에게 좌절하여 산의 고독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차라투스트라가 시장(인간세상)에서 경험한 모든 일들이 자기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음이 밝혀지며 끝이 난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에서 초인, 아이, 사자, 낙타, 우월한 인간, 마지막 인간, 삶, 죽음, 동정, 고독 등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독자의 몫이다.

     

책의 제목처럼, 차라투스트라는 끊임없이 ‘이렇게’ 말한다. 각 장의 내용은 ‘이렇게’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따라 구분된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받아들이고 해석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이러하다.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내가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어느 지점이나 시작점이 될 수 있고, 종착지가 될 수 있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어제의 일로 오늘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내일의 일 때문에 오늘을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결코 직선에 놓인 시간이 아니며,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

아이처럼 순수한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보고 사랑해야 한다. 그럴 때 삶을 긍정할 수 있으며, 삶에 대한 긍정은 나를 극복하는 힘이 된다.

얽매이고 사로잡힌 것들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회복했을 때 사랑으로 충만한 ‘오직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인간이 위대한 점은 그가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며,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 있다.(60쪽, 머리말)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단계 변화를 설명할 것이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어떻게 사자가 되며, 마지막으로 사자가 어떻게 아이가 되는지를.(중략)

아이는 순진함이자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유희다.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최초의 움직임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속세를 등진 정신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78쪽, 세 단계 변화에 대하여)     

그대들은 나에게 말한다. “삶은 감당하기 어렵다.”라고. 그런데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아침에는 자부심을 지녔다가, 저녁에는 체념하고 마는가?
삶이란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 앞에서 그렇게 나약하게 굴지 마라! 우리는 모두 짐을 지고 가는 귀여운 나귀들이 아닌가!
우리는 한 방울의 이슬만 떨어져도 파르르 떠는 장미 꽃봉오리와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참으로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96쪽,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는 아직 자유로운 삶이 활짝 열려 있다. 참으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은 그럴수록 덜 사로잡힌다. 하찮은 가난을 찬미하라!
국가가 소멸하는 곳에서 비로소 꼭 필요한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 그곳에 꼭 필요한 인간의 노래가, 단 한 번 뿐이고 대체할 수 없는 노래가 시작된다.(110쪽,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이 죽고, 모든 것이 다시 꽃핀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이 꺾이고, 모든 것이 새로 이어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이 헤어지고, 모든 것이 다시 서로 인사한다. 존재의 순환은 자신에게 영원히 충실하다.
존재는 매 순간 시작한다. 저기라는 공이 모든 여기의 주위를 굴러간다. 어디에나 중심이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있다.(340쪽,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자)     

저 높이 올라가려면 그대들 자신의 다리가 필요하다! 위쪽으로 실려 가지 않도록 하고, 남의 등이나 머리에 올라타고 가지도 마라! (중략)
그대들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인간이란 자신의 아이만 임신할 뿐이다.(439쪽,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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