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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06. 2021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창비에서 나온 '청소년 시선' 중 복효근 시인의 '운동장 편지'를 읽다가 '글쓰기'라는 시를 만났다.


글쓰기
          -복효근-

난 쓰기가 싫다.
돈을 쓰는 일이라면 일등도 할 텐데
힘쓰는 일이라면 내가 짱일 텐데
하다못해 교실 바닥을 쓰는 일이라면
기꺼이 해낼 텐데

시를 쓰라거나
수필을 쓰라거나 하면
난 용을 써야 한다.
입맛부터 쓰다.

오늘은 교내 백일장
시나 수필을 써야 한다.
난 쓰기가 싫다고 썼다.
지난번 쓰기에서 선생님한테 지적받은 걸 썼다.
선생님한테 섭섭하다고 썼다.

그런데 웬 떡?
선생님은 수필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칭찬을 하셨다.
나도 모르겠다.
선생님도 참 애쓰신다.  


학교에 근무할 때, 내 생각도 나고 아이들 생각도 났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도 글을 쓰지 않으면서 애들한테 왜 그리 글쓰기 수행평가며, 과제를 내어주었던지. 한 문장도 못 쓰는 아이들에게 한 문단을 써라, 한 장을 써라 그랬으니, 오뉴월에 서리도 내리게 할 서늘한 눈빛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들... 지금은 다들 성인이 되어서 잘 살고 있겠지..)


아무튼,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학교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글쓰기 과제와 평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선생이 되겠군...)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전문 작가로 살아갈 계획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제 글쓰기는 내 삶과 분리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종일 글을 생각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아이들이 툭 던진 말을 주워, 어떻게 하면 시로 쓸지 고민한다. 책을 읽다가 별안간 마음을 두드린 문장을 건져, 어떻게 하면 독후감에 적절히 인용할지 고민한다. 남편과의 다툼도, 엄마와의 통화도, 친구와의 만남도, 혼자 걷는 산책길도, 우연히 만난 이름 모를 꽃송이도, 해지는 노을도,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도……. 모두 어떻게 하면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별 것 없던 일상에 글쓰기가 스며들면서, 별 것 있는 일상이 되고 있다. 에세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어딘지 불편하고, 일기 정도 쓰는 초보 작가에게 글쓰기의 소재는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그저 그런 날들이 소재의 전부다. 그렇다 보니 그저 그런 날들을 그저 그렇지 않도록 해석하는 것만이,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부러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쓸 것 없는’ 날들이 허다할 것이 뻔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글을 써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글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투고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가끔 공모전에 글을 내보기도 했지만, 큰 소득이 없었기에 내 글은 명예와도 거리가 다고 여겼다. 나의 글쓰기는 돈도 명예도 되지 않으면서 에너지는 엄청 들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결국, 대단하진 않지만 사소하지도 않은 ‘변화’ 때문이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을 다시 보는 태도를 배웠고, 스쳐 지나갈 순간을 붙잡는 힘을 얻었다. 여전히 나란 인간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삶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의 수확만으로도, 평생 쓰고 또 쓰는 삶을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비록 돈도, 명예도 안될 지라도.


똑같은 순간을 비틀어 보고,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아 보면서 오늘도 글감을 찾는다. 글감이 없을 때는 ‘글쓰기’를 글감으로 삼으면 되지, 그러면서.                                                            


그러고 보니,

동시 한 편 읽고, 참 멀리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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