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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08. 2021

『저지대』(줌파 라히리)


책의 뒤표지에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저지대’는 소설의 제목이자, 주요 배경이다. 인물들의 과거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시간의 공간적 표현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장마라 흐린 날이 이어지던 중에 이 소설을 만났고, 꼭 비 내리는 날처럼 축축한 이 소설에 푹 빠졌다. 500쪽을 훌쩍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 쉽사리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읽는 내내 먹먹했고, 자주 아팠다.           


장편이지만 등장인물이 많지는 않다. 쌍둥이처럼 붙어서 지내던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을 중심으로 두 남자의 아내였던 가우리, 가우리의 딸 벨라 정도가 핵심 인물이다. 소설은 수바시와 우다얀의 10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60여 년의 시간 동안 이들이 겪은 삶은 질곡을 그린다. 저자는 각 장마다 인물 시점을 달리하며, 삶의 고비마다 인물들이 느낀 심리를 매우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였던지, 어떤 인물도 애처롭지 않은 인물이 없었고 안타깝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지만, 형제의 운명은 완전히 달랐다. 가족을 품고 생활의 안정을 지키는 일에 가치를 두었던 수바시와 사회의 안녕과 대의에 가치를 두었던 우다얀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가치관의 간극을 끝내 좁히지 못했다. 수바시는 공부를 더 해서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우다얀은 모국(인도)의 좌익운동을 위해 인도에 남았다.      


우다얀은 좌익운동 중에 철학을 전공하는 가우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당시 인도의 문화는 부모님이 정해주는 짝과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우다얀과 가우리는 그러한 관습을 완전히 무시하고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래 행복하지 못했다. 우다얀이 좌익운동 중에 경찰에게 총살당하면서 가우리는 혼자가 되고, 그때 가우리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벨라)이 자라는 중이었다.      


우다얀이 죽었다는 전보를 받고 인도에 온 수바시는 자신의 반쪽과도 같았던 우다얀이 남기고 간 이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결국 가우리에게 미국에 동행할 것을 제안하고 가우리는 일종의 도피로 그를 따른다. 벨라가 태어나고 수바시는 어쩌면 자신과 가우리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가우리는 우다얀의 기억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이후 가우리와 벨라, 수바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들이 각각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우다얀의 그림자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우다얀의 죽음’인데, 이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원인은 사회적 배경에 있었다. 우다얀이 죽음으로써 가우리의 삶은 무너졌고, 벨라는 아빠를 잃었으며, 수바시는 남겨진 이들에게 운명을 걸었다.


이들을 보며 사회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벌어지는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처참히 무너질 수 있음을 보았다. 무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물들은 그대로 무너져 주저앉지 않았다. ‘고여 있는’ 과거를 끌어안고 현재를 살았다. ‘전망하기 힘든 현재의 순간(179쪽)’을 묵묵히 견뎠고, 살아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저지대’를 품고 있었다. 실존하는 공간으로서 ‘저지대’가 아닌, 흘러가지 않은 시간으로서 ‘저지대’를. 수바시와 우다얀에게는 어린 시절 우애를 나누었던 시간으로. 가우리에게는 우다얀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으로. 벨라에게는 (비록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잉태했던 태초의 시간으로. 그렇게 저마다의 저지대를 품은 채 살아내고 있었다.


                



책을 덮으며 나의 저지대를 떠올려 보았다. 나의 현재를 이루는, 미래를 그리게 하는, ‘고여 있는’ 과거는 무엇일까. 그 저지대는 어디쯤에 존재하고 있을까.



어떤 생물은 건기를 견뎌낼 수 있는 알을 낳았다. 또 어떤 생물은 진흙땅에 몸을 묻고 죽은 체 지내면서 우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3쪽-14쪽)          

우리가 살아 있지 않다면 배울 것도 없어. 죽음 앞에서 우린 평등해. 그 점에선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것 같아.(93쪽)     

그녀의 가장 강한 이미지는 언제나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 둘 다 였다. 그것은 눈앞에 펼쳐진 수평선 같은 것이었다. 끝없는 시간의 스펙트럼 위에 짧은 기간 동안 빌려 쓰는 그녀 자신의 생이 덧붙여졌다. 선의 오른쪽에는 가까운 과거가 있었다. 그녀가 우다얀을 만난 해가 있었고, 또한 우다얀을 모르고 살았던 그 이전의 모든 해가 있었다. 그녀가 태어난 1948년도 있었고, 본문이 시작되기 전 서문과도 같은 그 이전의 모든 세월이 있었다. (178쪽)          

어떠한 전망도 하기 힘든 현재의 순간만이 그녀의 이해의 범위를 벗어났다. 그것은 자신의 어깨 바로 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같은 것이었다. 시야에 생긴 공백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는 눈에 보였으며, 감긴 실이 풀어지듯 계속 풀려나갔다.(179쪽)     

사람들은 대부분 미래가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펼쳐질 거라고 여기며 미래를 신뢰했다. 맹목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며, 실상과는 다르게 앞일을 그렸다. 이것은 의지의 작용이었다. 세상에 목적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었다. (중략)
무지와 희망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대를 하는 것,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243쪽)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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