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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12. 2020

짧지 않은 머리를 매일 감습니다.

엄마 아닌 '나'로 새로고침 하는 하루 10분

애들이 잠들었다. 드디어 육퇴다!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지만 모든 것을 잠시 접어두고 욕실로 간다. 여기저기 밥풀이, 우유가, 과일즙이 말라서 그대로 굳어버린 옷을 벗는다. 욕조에 선 채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듯한 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머리에 진하지 않은 향이 나는 샴푸를 바르고 손가락 다섯 개에 고루 힘을 주어 마사지하듯 펴 바른다. 머리카락이 또 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샴푸를 깨끗이 헹궈 내고, 같은 향의 린스를 다시 머리카락에 고루 바른다. 린스까지 깨끗하게 헹구고 올리브향이 나는 바디워시로 몸을 씻어낸다.

물기 젖은 몸과 머리카락을 적당히 닦은 뒤 바디로션을 잘 바른 후 얼굴에는 스킨과 에센스, 크림까지 발라준다. 그리고는 시간과 공을 들여 머리카락을 말끔히 말리고 어제 빨아놓은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 입고 거실로 나온다.

 


사랑이, 봄이 엄마 아닌 '나'로
새로고침 되었습니다.




사랑이를 낳고 200일쯤이 지난 날이었다. 아이는 저녁 8시 전에 잠들어서 새벽 5시쯤 일어났고,  하루 이유식 두 번, 수유 네 번, 낮잠 세 번의 패턴이 몸에 익어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날들이 이어지던 때였다. 육아 일상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제법 몸에 익었다. 다만 사랑이는 낮잠도 아기띠에 안긴 채로만 자서 내내 어깨와 허리가 아팠다. 깊이 잠든 것 같아서 눕히려고만 하면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알고 깨는지, 어쩔 수 없이 낮잠 시간 내내 아기띠에 아이를 안은 채로 소파에 걸터앉아서 아이가 깰 때까지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웬일인지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켜보고 싶었다. 사랑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아이에게 텔레비전 영상이 좋지 않다고 해서 잘 켜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은 책도 손에 안 잡히고 그냥 멍하게 있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켰다.


고백부부라는 드라마가 재방송 중이었다. 채 10분도 보지 않았는데, 눈물이 터졌다. 그 안에 내가 있었다.

고백부부의 한 장면

옷 주변에 얼룩진 분유 자국, 정돈되지 않은 채로 질끈 묶은 머리, 손목을 감싼 아대, 피부 아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민낯.

여주인공인 장나라는 미혼이므로 작품을 쓴 작가가 반드시 기혼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상세한 부분까지 잘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애를 낳아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옷 갈아입는데 필요한 시간 그 몇 초가 왜 없는지, 머리는 왜 하나같이 질끈 묶고 있는지,

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아대는 왜 끼는지.


애를 낳아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분유로 얼룩진 티셔츠를 갈아입을 몇 초의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분유로 얼룩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긴 머리를 매일 곱게 단장할 틈이 있다면 차라리 뭐라도 먹거나 잠이라도 더 자야 한다는 것을, 또 긴 머리카락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기 십상이라 풀고 있다가는 순식간에 아이에게 머리채를 잡힌다는 것을,

아이들은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오래 안아달라고 보챈다는 것을. 그래서 손목과 손가락이 남아날 틈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몰랐다. 겪어보고서야 알게 된 것들이다.


나는 한동안 고백부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본방송을 못 본 날에는 아이를 재운 후 다시 보기로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봤다. 여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첫사랑과 재회하는 내용이 아주 조금은 설레기도 했지만,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나를 붙잡은 장면들은 너무나 현실감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여주인공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었다. 이해가 되어서 공감이 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사랑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길었던 머리는 그때쯤 치렁치렁할 만큼 길었다. 머리가 기니 감고 말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재우고 난 저녁이면 '샤워해야하는데, 머리감아야 하는데' 하며 버티다 자기 직전에 대충 후다닥 해치웠다. 그다지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냥 습관이라 안하기는 찝찝하니 대충, 빨리 해버렸다. 아주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하루쯤 건너뛰기도 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엄마를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하루에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아주 잠깐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를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그 뒤로 나는 하루 한 번,  아이가 깊이 잠든 후에 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정성스럽게 샤워를 했다. 감기에 걸리거나 아이가 유난히 잠들기 힘들어했던 날에는 샤워를 생략해도 긴 머리만은 꼭 감고 말끔하게 말려주었다. 그리고 꼭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별일 아닌  일이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엄마를 잠시 벗고 나를 다시 입는 의식.



둘째를 낳고는 도저히 긴 머리를 매일 감고 말릴 체력이 안되어서 단발로 잘랐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의식을 생략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 십 분으로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늘도 나는 따듯한 물로 정성을 다해 머리를 감았다. 가능한 한 느긋하게, 최대한 천천히  그 시간을 즐겼다.





여기서 반전포인트.

잠든 아이들이 뒤척이다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하면 여유고 뭐고 없다. 물에 젖은 채로 대충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냅다 침대로 뛰어가야 한다. 한 번은 린스를 바르다 말고 아이 둘이 함께 울기 시작해서 린스를 바른 머리를 그대로 수건으로 감싸고는 욕실을 뛰쳐나온 적도 있다. 왜 자다 깨면 꼭 아빠의 토닥임으로는 안 달래지고 엄마의 손길만 찾는지...


아, 고달픈 육아의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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