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어머님이시죠? 여기 보건소입니다.”

by 진아

“봄이 어머님이시죠? 여기 보건소입니다.”

“아, 네.”

“봄이가 양성 판정이 나왔어요.”

“네?”


방금 잠에서 깬 봄이를 안고 있던 순간이었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쏟아지는 몸을 식탁 의자에 털썩 기대었다. 아이를 끌어안은 그대로.


봄이 양성이래. 빨리 사랑이 마스크 씌우고 자기도 마스크 써. 내 것도 챙겨줘. 봄이 것도.”


네 식구의 마스크부터 챙겼다. 경황이 없는 내 상황을 짐작했는지, 보건소 직원은 잠시 기다려주는 듯 말이 없었다.


“어머님, 일단 봄이가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이는요? 사랑이도 양성인 가요?”

“사랑이는 음성입니다. 봄이만 양성이 나왔어요.”

“....”

“어쨌든 봄이가 양성이라 부모님도 검사를 하셔야 해요. 한 시에 보건소로 나오셔서 검사받으시면 됩니다.”

“그럼 봄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 봄이가 혼자 입원 치료를 받을 연령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 두 분 중에 보호자 한 분이 지정 간병을 하셔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일단 부모님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양성이 나오면 그분과 봄이가 함께 입원을 할 거구요. 두 분이 모두 음성이 나오면 상의하셔서 지정 보호자로 한 분을 결정하시면 됩니다.”

“그럼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자가격리를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곧 담당 공무원이 전화가 갈 거예요. 또 동선 파악을 위해서도 전화가 갈 겁니다. 일단 보건소로 한 시까지 오시면 돼요.”

“그런데 상황이 이래서 아이들을 어디에 맡길 수가 없는데 어쩌죠?”

“아이들 마스크 잘 씌워서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통화 내내 남편의 얼굴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불안해하는 나를 이해 못 하던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의 생각에 동의하며 함께 안일한 하루를 보낸 건 또 나였다. 전화를 끊는 순간, ‘이건 꿈인가’ 싶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판단은 한없이 흐려졌다. 시야도 함께 흐려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어째서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원망조차 들지 않았다. 뇌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춘 듯했다. 그때까지 여전히 품에 안겨 있던 봄이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 왜?"

"아..응."

"왜 마스크 써야되는데?"

"있잖아. 봄아. 어제 우리 코안에 뭐집어넣어서 코로나 검사받고 왔지?"

"응."

"봄이 몸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왔대. 그래서 봄이가 다른 사람들한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해."

"오빠는?"

"오빠 몸 속에는 없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첫째 사랑이는 "엄마, 그럼 봄이 코로나 걸렸어? 어떻게 해?"라고 물었다. 잘 치료하면 괜찮다고 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괜찮을까?' 겁이 났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도 검사해야해서 조금 있다가 보건소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황망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남편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제까지 봄이 손에 닿았던 모든 장난감을 베란다로 내어놓았다. 시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서 알코올 소독제를 사서 현관 앞에 두고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베이비룸용 가드를 다 꺼내와서 거실 중앙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두 아이 사이에 물리적 경계가 생겼다. 아이들은 오히려 경계선으로 자꾸만 모였다. 아이들의 행동에 한껏 예민해진 우리는 괜히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밉다고 했다.


몸을 일으켜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일상이 무너진 순간에도 식사 시간은 꼬박꼬박 돌아왔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선 확인을 위한 전화가 걸려왔다. 봄이의 첫 증상 발현일로부터 3일 전까지 모든 동선을 샅샅이 기억해내야 한다고 했다. 수요일 아침에 미열이 났고 소아과를 방문했다고 했더니 그 전날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냐고 물었다. 화요일 늦은 밤에 대변을 네 번 보고 잤다고 했다. 평소에도 그런 적이 있냐고 묻길래 그렇게 여러 번 연이어 본 적은 없었다고, 하지만 변 상태가 정상변이었기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요일 아침에 미열이 났고, 병원 진료를 받을 때에는 전날 밤 배변 양상을 말했다고도 했다. 물놀이나 냉방병으로 인한 바이러스가 유행이라 그런 것의 일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그럼 첫 증상 발현일을 화요일로 잡을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소화기에도 잘 달라붙어요. 어쨌든 평소와 다른 양상의 배변이라면 그것도 바이러스 영향일 수도 있어서요."

"그때도 설사가 아니었고, 그 뒤로는 배변에 단 한 번도 이상 증상이 없었는데도 그런가요?"

"일단은 의심 증상을 모두 관찰해야 해서 화요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3일 전 토요일부터 사소한 것까지 다 말씀해주세요."


지난 일년 반동안 코로나가 무서워 대중교통도 안 타고,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간(평일 오전)만 고집했었다. 가능한 한 실외공간에 머무려고 했고, 실내에 있더라도 사람이 많아지면 얼른 자리를 뜨기 바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기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소소하게 방문한 곳들이 많았다. 다 집 근처 놀이터,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아이 어린이집 근처 육아지원센터 등이었지만 어쨌든 많은 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에게 어떤 징후도 없었으니 내 아이가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혹시 확진자가 방문할지도 모르니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철저히 씌워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온 나라가 코로나로 들썩거리는 와중에도,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을 조심시키면 비켜갈 수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불행이라는 녀석이 마음먹고 파고들면, 어디서든 틈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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