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치료센터 입소가 결정되었다.

by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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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울다 잠든 아이를 쓰다듬다가 거실로 나오니 남편이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속은 허전한데 도저히 밥은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밥 반 공기를 차가운 물에 말아 마시듯 먹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치료센터 입소한다고 했어도, 일 처리되는 걸 보니 오후는 되어야 할 것 같지 않아?”

“내 생각도 그래. 전화 연락도 제대로 안 되고, 우리는 밀접접촉자인데 담당 공무원한테 어떤 연락도 못 받았잖아.”

“지금 다들 정신이 없겠지. 일단 우린 격리 중이니까 조심할 거라고 생각 하나 보지. 그나저나 짐은 어느 정도로 챙겨가야 하는 거지? 뭐가 제공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짐을 미리 쌀 수도 없네.”

“그냥 내일 연락 오면 하자. 그러고 나서 짐 싸고 해도 충분할 거야.”

“근데 내일 거기까진 어떻게 가지? 내가 운전해서 가야 하나?”

“그것도 모르겠네.”


답 없는 질문만 늘어놓다가 쏟아지는 피로에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둘째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 채로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마스크를 벗길까 고민했지만, 둘째의 잠버릇이 자다 깨서 울거나 내 얼굴에 제 얼굴을 비비는 것임을 알기에 그냥 두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나까지 양성 판정을 받으면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둘째의 잠버릇을 조금이라도 편히 받아주기 위해 마스크 두 개를 겹쳐 썼다. 숨이 막혔다. 창문을 조금 열였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아이의 뒤척임이 느껴져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혹시라도 이른 시간에 공무원에게서 연락이 올까 봐 휴대전화를 진동 모드로 바꾸었다. 아이는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면서도 마스크는 벗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짠해서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을 말없이 어루만졌다.


8시가 조금 넘어 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봄이 어머님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아, 혹시 부모님 검사 결과 안내받으셨어요?”

“네, 음성으로 받았습니다.”

“아, 네. 오늘 오후에 생활치료센터로 어머님과 봄이 함께 입소하실 거예요.”

“그럼 이동은 어떻게 하나요? 짐은 어떻게 챙기면 되나요?”

“1시에서 3시 사이에 구급차가 갈 겁니다. 지금 이 번호로 문자 한 통 보내드릴 테니까 참고하셔서 짐 챙기시면 됩니다.”

“일단 한 시로 알고 있으면 될까요?”

“아. 한 시에서 세 시 사이라. 음.... 그냥 세 시쯤으로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상대방은 끊기 전에 두 번이나 더 ‘세 시’를 강조했다. 아무래도 말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을 때 발생할 민원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알 것 같아서 애당초 세시로 생각하자 마음을 먹었다.


안내된 문자는 챙겨야 할 물건들을 대략적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시설 입소 후에 드는 생각이지만, 차라리 센터에서 제공되는 물품을 알려주었다면 짐을 챙기기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개인용품’ 등은 너무 모호해서 도대체 어디까지 챙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최소 열흘 이상은 머물러야 하는 데다 외부인 출입이 일절 금지된 곳이라니, 뒤늦게 빠뜨린 짐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이것저것 집어넣게 되었다. (그랬는데도 막상 와보니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


캐리어 두 개에 아이 장난감 상자, 각종 비품을 넣은 작은 쇼핑백까지 챙겼다. 두 아이에게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이며 남편은 첫째를, 나는 둘째를 데리고 시간을 보냈다. 두 시쯤 되었을까. 휴대전화 액정에 낯선 휴대전화 번호가 떴다.


“안녕하세요. 보건소 소속 앰뷸런스 담당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두 시 사십 분쯤 출발할 예정입니다. 시설 입소가 세시라서요.”

(그런데 아침에 공무원은 뭔, 한 시에서 세 시라는 거야. 한 시는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시간이었네!)

“그럼 시간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누가 확진이신가요?

아, 저는 보호자이고 음성 판정받았습니다. 아이가 확진이에요.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가는 길에 다른 환자 한 분을 더 태우고 가야 해서요. 그분은 확진자입니다.”

“아... 뭐 마스크 잘 착용하면 괜찮겠지요.”

“보통 두 세분씩 함께 이송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네, 시간 맞춰 준비할게요.”


남편에게 구급차 이송 시간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른 확진자 한 분과 함께 타고 간다는 이야기도. 남편은 걱정스러워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양상이 워낙 다양한데, 음성인 내가 확진자 두 명(우리 아이 포함)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를 더 이상하게 여기며,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남편에게 번호를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나와 봄이만 이송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신 이송팀에서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라도 바쁜 분들에게 폐가 된 건 아닐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나 아니면 둘째를 돌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누구 걱정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만약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면, 말도 안 되는 촌스러운 설정이라 생각했을 타이밍이었다. 참 세차게도 쏟아졌다. 그만큼의 비를 머금은 구름은 꽤 짙은 어둠을 드리웠다. 창밖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빗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아이를 안고 짐까지 들어야 하는데, 제발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저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구급차가 출발했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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