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불안이 높은 나인데, 아이의 코로나확진이라니.
나는 불안이 높은 편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더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생 신분으로 불안감을 느낄 만한 대표적인 일은 역시나 ‘시험’이었다. 학기에 두 번 있는 시험을 앞두고는 마치 통과의례처럼 위장 장애를 겪었다. 소화불량이 아니면 위염, 그것도 아니면 장염.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시험에 대한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여 순간적으로 과호흡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시험에 대한 불안은 목표하던 대학에 합격하면서 조금씩 극복되었다.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불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의 불안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아주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은 내 삶의 일부이다.
외출할 때면 가스밸브는 잠갔는지, 현관문은 제대로 닫혔는지, 꼭 한 번은 돌아와 확인해야 한다. 여행을 가거나 멀리 외출을 하게 되면 ‘혹시’ 하는 마음에 필요 이상의 짐을 챙긴다.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는 준비물을 몇 번이나 체크해야 하고, 그만큼 체크를 하고도 집을 나서는 순간이면 다시 한번 가방을 살핀다. 빗길을 운전할 때면 꼭 대형사고가 날 것만 같아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남편이 늦게 귀가할 때면 아무 일 없을 걸 알면서도 괜한 불안에 휩싸인다.
지난 2년은, 그토록 불안한 나에게 새로운 ‘불안’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해였다. (불안이라는 녀석은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뿌리내리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안의 씨앗을 뿌린 녀석은 바로, 코로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녀석의 출몰로 일상이 마비되면서 안 그래도 불안이 높은 나는 더 자주 불안해야 했다.
여기서 마스크를 벗어도 될까?
이곳은 안전한 곳일까?
저이는 안전한 사람일까?
물론 평소 나의 불안은, 약을 먹을 정도이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불안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누구나 감염될 수 있고, 치료제도 없으며, 심지어 감염되고도 자기가 감염된 줄도 모르는 무증상 감염자들도 있다는, 이 신종 바이러스는 내 불안에 끊임없이 물을 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나와 정반대로 불안지수가 현저히 낮은 사람이라, 남편의 말에 의지해 내 안에 싹트는 불안을 억누르며 지내왔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코로나라니?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학부모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부터 나의 불안이 자라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었다.
아이가 검사를 받고 돌아온 날 밤.
아이의 확진 소식을 통보받았던 아침.
아이의 생활치료센터 입소가 결정되었던 통화.
생활치료센터에서 병의 경과와 치료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하던 시간.
궁금증이 생겨 전화를 걸면 이곳은 저곳으로, 저곳은 다시 이곳으로 책임을 넘기던 담당자들.
아무런 검사도 없이, 오직 자가 진단 결과만으로 퇴소가 결정되던 시스템.
퇴소 이후, 오늘로 3일째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의 체온.
여전히 남아 있는 남편과 첫째의 코로나 재검 결과.
이제부터 시작인 나의 2주 격리 생활.
모든 것이 더해져 내 안의 불안은 이제 아름드리나무가 될 지경이다. 사실 아이는 그 흔한 감기에 걸렸을 때보다도 덜 아팠다. 덜 아팠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초기 3일 정도 미열이 오르내린 것이 증상의 전부였다. (이제와 다시 미열이 난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그럼에도 두렵고 불안한 것은, 이 바이러스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에게도 여전히 연구 대상인 거겠지만.
이제껏 내가 불안을 다스려온 방법은 분명했다. 애써서 익히고, 배워서 알고, 미리 준비하고, 다시 점검하는 것. 그래서 오늘, 코로나 관련 책을 몇 권 주문했다. 그동안 뉴스로 지겹게 들어왔지만,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를 한 번 파헤쳐 봐야겠다. 알게 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한 뒤 불안만 키우고 앉아 있는 꼴은 어쩐지 우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