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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04. 2022

나만의 글체를 찾아서.

글체라, 이번 글감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글체라는 표현을 전문용어로 말하면 ‘문체’ 일 것이고, 익숙한 표현으로 하면 ‘글의 느낌 혹은 글의 색깔’이 될 것이다. 나만의 문체라, 색깔이라. 고민해보지 않았던 지점이었다. 지금까지 한 권의 책을 쓰고 매일 글을 쓰면서도 내 글에 어떤 색깔이 묻어난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묻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어떤 색인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글감을 받아 들고 내 글 몇 편을 정독했다. 여전히 낯부끄러운 내 책도 다시 읽어보았다. 어떤 느낌일까. 어떤 색깔일까. 그래도 여러 편 연이어 읽다 보니, 글체라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있었다.      


1. 문장이 짧은 편이다.

2. 수식어를 동시에 여러 개 넣지 않는다.

3. 어려운 표현보다는 쉬운 표현으로 풀어쓴다.

4. 글 전체에서 온기가 느껴지도록 표현을 다듬는다.      


1번부터 3번까지는 직업병의 영향이 분명했다. 국어교사라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단연코 아니다. (업계(?) 비밀을 폭로하는 것 같지만, 국어교사라고 모두 다 글을 쓰거나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다. 확신컨대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그렇지만 국어교사라서 글을 쓸 때 고려하는 사항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내내,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문학과 문법, 화법과 작문 교육론을 마르고 닳도록 공부했다. 교단에 선 이후로 몇 년간 아이들에게 문법과 문학, 화법과 작문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가볍게 책을 읽을 때도 잘 읽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은연중에 구분하게 되었다. 하물며 글을 쓰기 시작하자 직업병은 더욱 심해졌다. 문장 구성과 글 전체의 흐름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단문을 쓰려고 노력했고, 장문이 되면 쉼표를 써서라도 문장의 흐름을 구분했다. 수식어가 여러 개 중첩되면 읽기 힘든 글이 되므로 가능한 한 수식은 하나로 압축하려 애썼다. 어렵고 현학적인 표현보다 누구라도 이해가 쉬운 표현을 쓰려 노력했다. 글의 통일성을 해치는 문장은 없는지 읽고 또 읽으며 퇴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글이 다듬어지면서 조금씩 내 글만의 느낌이 생겼다.


4번의 특성(온기가 느껴지는 글)은 직업적 특성과는 별개다.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는 특성이랄까. 엄마뿐이었지만 엄마만으로도 완벽했던 날들이었다 여길 만큼, 충분히 사랑받으며 살아왔다. 엄마와 연결된 세계(외가 시구들) 역시 완벽하게 나를 사랑해주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사랑이 많은 어른으로 자랐다. 덕분에 지금껏 사랑을 받는 것에 낯설지 않고, 사랑을 주는 것에 야박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여러 사람에게 내 글이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묘한 책임감이 생겼다. 적어도 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내가 품은 온기가 오롯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온기를 담는 방법은 진실한 내용을 따스한 표현으로 써내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따듯한 느낌의 글을 많이 읽었다. 박완서 님, 이해인 님, 피천득 님의 수필을 읽었고, 김용택 님, 도종환 님, 정호승 님, 함민복 님의 시를 필사했다. 진실한 삶의 모습을 포장 없이 담으면서도 읽는 마음에 온기를 전하는 글들을 자주 접하려고 애썼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의 글체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좋은 표현을 메모하거나 기억하면서 언젠가는 이분들의 결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할 수 없는) 소망도 품었다.      




여전히 내 글의 색깔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글에는 어둠이 적고 불만이 얕다. 그러니 파랑이나 검정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열의나 엄청난 포부도 없다. 그러니 열정적인 빨강이나 진한 주황도 아닐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욕심을 내자면 읽기 수월한 글이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내 글의 색깔이 맑은 날 지는 태양빛 같으면 좋겠다. 붉지만 진하지는 않고 곧 밤이 오겠지만 어둡지는 않은, 하루를 잘 살아낸 태양이 아스라이 산을 넘어가는 빛깔 같았으면 좋겠다. 부담스럽지 않은, 불그스름한 그 빛깔. 읽는 동안 편안하고, 읽은 후에는 따스한 느낌으로 남는.       


글을 쓰려는 당신, 혹은 글쓰기에 고민인 당신께 여쭌다.

당신의 글체는 어떤 색깔인가요?

어떤 빛깔의 글을 쓰고 싶은가요?          




덧붙임.(어쩌면 Tip)

 

글을 시작하기도 힘든데 글체라니 너무 먼 이야기 같으시죠? 하지만 또 그리 먼 얘기는 아니랍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의 느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 훨씬 더 수월하게 글이 써진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쓰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읽어서 편안한 글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박완서 님, 정호승 님 같은 분들의 글이 지향점이 되었지만, 개인마다 좋아하는 글의 느낌은 다르니까요. 여러 작가님들의 에세이나 시를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유난히 끌리거나 좋은 작가님들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의 글을 그냥 읽어도 보고 좋은 표현은 필사해두었다가 내 글에 한 번쯤 인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많은 문학 혹은 비문학 작품들을 교과서를 통해 접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아주 유명한 작가님들이나 권위 있는 분들의 글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유명하거나 권위 있는 분들이 괜히 그런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니더군요. 어떤 글을 모델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교과서에서 보았던 작가님들의 대표 에세이나 시를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김훈 작가님의 문체와 박완서 작가님의 문체는 비전공자가 보더라도 한눈에 보일 만큼 큰 차이가 있거든요. 자꾸 보고 접하면서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글에도 ‘문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를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의 글쓰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브런치 작가 3명 (선량읽는인간 , 진아)이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한 번쯤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세 사람의 이야기는 각각의 물길을 타고 흐르지만, 결국은 글쓰기의 바다에서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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