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어마어마한,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Upavistha Konasana-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작을 이미지 검색으로 찾아본 것이다. 미리 밝히건대 요가 동작의 이름을 외울 만큼 요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앉은자리에서 다리를 가로로 찢고(이건 벌린다는 표현보다 찢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팔을 앞으로 뻗으면서 상체를 완전히 숙여 바닥에 밀착하는 자세다.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에 다리 뒤쪽 근육이 찢어질 듯 아프긴 해도, 일단 자세가 나온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이게 된다니, 나조차 놀랄 따름이다.
요가를 제대로 배운 지는 꽤 되었지만, 종종 홈트레이닝으로 몇 가지 자세를 따라 해 왔다. 평소에 허리가 안 좋고 다리가 잘 뭉치는 체질이라 주로 하체 스트레칭을 많이 했는데, 유난히 안 되는 자세가 바로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였다. 다리를 찢듯이 벌리는 것도 안 됐지만 그 자세에서 허리를 굽히는 것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다리를 그냥 앞으로 쭉 뻗은 상태에서 발바닥을 잡는 자세는 그나마 가능한데, 다리를 벌리는 순간 허리는 꼿꼿이 펴져 굽혀질 줄을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과거에 요가 학원에 다닐 때에도 그 자세가 그렇게 안 됐었다.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절대, 절대 안 됐다. 그 기억에 미치자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내 몸이고 내 근육인데,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싶으면서도 그 언젠가를 앞당기고 싶었다. 아이들과 놀 때에도 일부러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았다. 팔은 안 뻗어져도 다리는 일단 찢어(?) 보자는 심정으로.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앉았고 아주 조금씩 허리를 굽혀 보았다. 그런 자세로 앉아 있는 내 등 위로 아이들이 돌진하는 바람에 의도와 상관없이 팔을 뻗게 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늘 처참했다. 제발 내려오라고, 엄마 다리 찢어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어느 날 문득, 나의 자세를 인지한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다리를 옆으로 찢은 채로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턱을 괴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마음을 다잡으며 턱을 괸 손을 풀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앞으로 뻗기 시작했다. 턱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 순간의 희열이란!
벌떡 일어나 팔딱팔딱 뛰고 싶었으나, 다리 근육이 당겨 벌떡 일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상체를 일으키고 두 다리를 살금살금 모아 붙인 후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이게 되는 거구나. 하면 되는 거였어!
그날 이후로 하루 한두 번은 무조건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Upavistha Konasana)를 했다. 다리 뒤쪽이 찢어질 듯 당기는 기분이 통증이 아닌 이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내 근육을 내 의지로 조절했다는 생각에 쪼그라든 마음까지 덩달아 펴진 느낌이었다. 가끔 딸아이를 내 다리 앞에 눕힌 채로, 상체를 한껏 숙여 뽀뽀 쪽쪽 놀이를 하곤 하는데 그 사랑스러운 기분 또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이었다.
글쓰기 매거진에서 요가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은 요가 이야기를 빌려 글쓰기 이야기를 한 것이다. 글쓰기와 요가는 꼭 닮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은 요가를 시작하는 일과 닮았다. 요가를 시작할 때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었다고?’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글쓰기가 꼭 그렇다. “내 안에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다고?” 요가의 다양한 자세를 통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근육을 인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도전하며 글쓰기를 향한 전에 모르던 열망과 내 안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요가 초반에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동작들을 결국 해내게 되려면, 딱 두 가지에만 매달려야 한다. 시간과 꾸준함이다. 시간은 흐르게 되어있고, 그 안에서 꾸준히 같은 자세를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하루에 1mm씩이라도 근육은 이완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1mm도 안 되는 날이 많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방법은 하나뿐이다. 꾸준히 같은 동작을 계속하는 것. 글쓰기도 꼭 같다. 처음 쓴 글에서 하나도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도 계속 쓰는 거다. 어설퍼도 쓰고, 완성을 못 해도 쓰고, 문법에 어긋나도 쓰고, 쓰고 또 쓰고, 막 쓰고 계속 쓰고. 그러다 보면 팔이 쭉 펴지고 다리가 쭉 찢어지듯, 글도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요가는 기본적으로 내면에 집중하는 운동이다. 사실 운동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요가는 수련이다. 내면을 갈고닦는 일이다. 요가를 하다 보면 잡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잡생각을 했다가는 균형을 잡을 수 없고, 근육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집중, 또 집중. 다른 것 아닌 내 몸에 내 정신에 집중 또 집중해야만 어설프게라도 요가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글쓰기도 그렇다. 내 안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불편함, 나의 행복감, 나의 슬픔, 나의 기쁨, 나의……. 오로지 나에 집중했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글이 되어 표현된다.
요가가 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요가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일 확률이 높다. 어떤 유산소 운동만큼이나 요가는 동적인 운동이다.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글쓰기도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정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정적인 활동이 아니다. 글을 쓰기까지, 글을 쓰는 동안 머리의 회전 속도는 엄청나다.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을 거르고 걸러, 품은 생각을 고르고 골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결코 정적일 수 없다.
요가 자세는 며칠만 하지 않아도 바로 티가 난다. 요가 전문 강사가 아닌 다음에야, 얼마간 동작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 할 때 전보다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잘 되던 동작이 잘 안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근육을 다잡는 일은 그토록 어렵지만 흐트러지는 건 한순간이다. ‘쓰기 근육’이라는 말이 있다. 글쓰기도 일종의 근육이다. 자꾸 글을 쓰는 삶으로 움직이고 실천하는 것만이 글쓰기 근육을 키울 수 있다. 그것 또한 요가 동작처럼 얼마간 게으름을 부리고 나면 금세 약해져 술술 써지던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게 된다.
이쯤 쓰고 보니, 내가 대단한 요가 수련자라도 되는 것 같다. 일상에서 스트레칭으로 요가 동작 몇 가지를 겨우 따라 하는 주제에. 진짜 요가를 배운지는 수년도 더 지난 주제에.
그래도 한 번은 꼭 쓰고 싶었다. 요가를 할 때와 글을 쓸 때, 꼭 같게 느껴지던 이 마음을. 요가나 글쓰기나, 결국 내 안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똑같다는 것을.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는 분들께,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분들께.
우리 모두 요가 수련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요가 동작 몇 가지로 스트레칭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 스트레칭만 잘해도 생활에 찌든 근육을 풀고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데, 몇 가지 동작쯤이야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꼭 그 맥락으로 우리 모두가 작가가 될 필요가 없지만, 내 마음을 끼적이는 글쓰기는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일기일 수도 있고, 단상일 수도 있고, 편지일 수도 있는 짧은 글들만으로 삶에 찌든 마음을 털어내고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글쓰기, 한 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브런치 작가 3명 (선량, 읽는인간 , 진아)이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한 번쯤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세 사람의 이야기는 각각의 물길을 타고 흐르지만, 결국은 글쓰기의 바다에서 만날 것입니다. 모두가 쓰는 삶을 꿈꾸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글쓰기를글쓰기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