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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Jan 19. 2022

글이 되는 실.행.력

#ep4.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힘

실행력 [:실행녁]  

noun 실제로 행함.  
ㄴ열매 (실), 행할 (행), 힘 (력)



나는 글을 참 못쓴다.

못난 글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글을 씀에 있어서도 잘 써지지가 않는다. 쓰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같은데 손이 떼어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쓸 때마다 매번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무언가를 정말로 이루기 위해선 마법이거나 실행력이거나,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 검지 손가락을 아무리 흔들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마법은 물 건너간 것 같으니 실행력이라도 손에 넣어야 하는데 이것도 마법만큼이나 쉽지가 않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이 실행력이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해 왔다. 실행력이란 절대적이고 신성한 어떤 능력이어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고, 실행력이 있는 사람은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것처럼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지만, 나같이 못 가진 사람은 애초에 무슨 일이 주어져도 빠릿하게 처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를 못하면 '역시 난 이렇게 생겨먹었어'하고 다른 것들도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종종 경험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정말 그럴까?

실행력이 없다고 해서 오늘 하루 정말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은 채 보냈는가를 말이다. 아니다. 적어도 눈을 떴고, 몸을 일으켰으며, 일과를 수행했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의 하루를 지탱하는 모든 순간에는 크든 작든 힘이 필요하다. 어떤 것들은 너무 당연해서, 어떤 것들은 너무 좋아서, 어떤 것은 누군가와의 약속이어서, 또 어떤 것은 나의 신념과 맞닿아 있어서... 순간순간, 그것들을 행하는데 필요한 힘의 모양과 크기는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어떤 것들은 실행했고 또 어떤 것은 실행하지 못하기도 했다. 내 안의 실행력이 발휘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기 위한, 글을 쓰게 하는 실행력이라는 것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무조건 콧김을 뿜으며 영혼까지 끌어다 쓰지 않아도 글쓰기를 실행하기 위한 적절한 힘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실행력의 총량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도 글쓰기를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못난 글일지언정, 못 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도 힘 조절이 필요하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기까지 변태가 필요하듯,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기까지 몇 가지 단계(변태짓이 아닙니다)가 필요하다. 어떤 이는 쓰는데 까지 마음먹기가 힘들고, 어떤 이는 쓸 마음은 있는데 첫 줄을 시작하기가 힘들다. 어떤 날은 잘 써지다가 또 어느 날은 써지지 않아 글과 글 사이의 갭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계속 계속 쓰는 나의 글이 어떤 꼴을 갖추기를 바라는 단계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단계에서 작용하는 힘은 서로 다르다. 나는 나의 경험밖에 쓸 수 없으니 내가 서 있는 단계와, 거쳐온 과정들을 실행력의 관점에서 기록해보고자 한다.


※WARNING: 이후 소개하는 '힘'들은 어떠한 과학적 물리적 근거를 갖지 않으며, 순전히 필자 개인의 경험과 뇌피셜에 의한 것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실행력 1단계. 안 쓰던 사람을 쓰게 하는 힘

이 단계에서는 쓰지 않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몸이 향해있는 각도를 트는 힘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팔씨름 같은 것이다. 넘어갈 듯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던 사람이 어느 임계점을 지나면 완전히 쓰는 사람, 아니 쓸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전향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원리만 알고 있으면 큰 힘 들이지 않아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1단계를 클리어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착즙기 같이 넣고 밀고 누르는 힘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안 먹은 자 쌀 수 없고 안 읽은 자 쓸 수 없는 원리인데, 내 안에 생각과 감정과 지식과 자극을 꾸준히 밀어 넣어준다면 언젠가 그것이 소화가 되어 본인이 원치 않아도 똑! 하고 뭐라도 한 방울 밀려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고 경험한 그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순간이 운명처럼 찾아온다. 그다음은... 되돌릴 수 없다.


실행력 2단계. 어설픈 한 줄을 쓰게 하는 힘

아무리 긴 장편의 글이라도 딱 한 글자, 딱 한 줄에서 시작한다. 예외는 없다. 그러니 한 줄만 쓸 수 있으면 이미 시작은 됐다고 봐야 한다. 한 줄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힘은 넣는 힘이 아니라 빼는 힘이다. 지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글에 귀천을 따지지 말고, 풀칠하는 심정으로 한 줄부터 쓰기만 하면 뭐든지 글이 된다. 점만 찍어도 글이고 #태그도 글이니 주어 동사 조사 넣어 잘 버무리기만 해도 글이라 명명해도 된다는 말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자. 누가 볼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최대한 빼고. 나만 볼 생각으로 욕심 내지 않고. 일단은 한 줄 그리고 또 한 줄 콩나물 전법으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날 '짜식, 괜찮은데?' 싶은 내 글과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자아도취 하진 말기. 다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실행력 3단계. 두 번 세 번 계속 쓰게 하는 힘

어찌어찌 한 번은 쓰게 되었다. 그러다 필 받으면 '이걸 내가 썼어?' 싶은 대견한 문장이 써지기도 한다. 그런데 큰 일이다. 쓰고 싶은데, 계속 쓰고 싶은데 써지질 않는다. 머릿속은 '써야지' 세 글자로 가득한데, 게다가 몸을 틀어 이미 쓸 수밖에 없는 몸이 되어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이를 어쩌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 한복판에서 자꾸 쓰게 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쓰게 하는 힘은 손에 손을 잡는 힘, 연대의 힘이다. 나의 글을 읽어주는 이가 있고, 함께 쓰자며 도닥이는 사람들이 있다. 약속한 날짜가 있고, 그것이 푯대가 되어 나를 나아가게 한다. 계속 쓰는 레일에 나를 두려면 이제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 일환으로 지금 여기 '글쓰기를 글쓰기' 매거진을 함께 써 나가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번에도 나는 함께 하는 이들 덕분에 기어코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그다음엔 무엇이 있을까?

계속 쓰는 사람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어떤 단계일까? 나의 글이 꼴을 갖추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공감하는 것?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갖게 되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이다음의 단계에 필요한 힘, 해결하는 힘을 손에 넣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그때는 미완성으로 끝난 이 글의 진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겠지.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어떤 실행력인가?

어떤 힘이, 당신을 쓰게 만드는지, 움직이게 하는지.

나도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공동 매거진 <글쓰기를 글쓰기> 는 브런치 작가 3명 (선량/진아/읽는인간)이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이름도 생김새도 사는 곳도 다른 우리가 '글쓰기'라는 하나의 주제로 만나 각자의 생각과 경험, 방법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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