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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0. 2022

글로 먹고살고 싶었던 무명작가의 고백

[글쓰기를 글쓰기] 선량 이야기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걸 그랬나 보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노인과 바다> 중에서



‘글을 쓰지 말걸 그랬나 보다.’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글만 쓰면, 꾸준히 쓰기만 하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아니 그 정도도 바라지 않았다. 아이들 간식비 정도만 벌어도 감지덕지할 것 같았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글쓰기였다. 청소하고 뒤돌아서면 다시 더러워지고,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또 밥)과 개미지옥 같은 육아로 심신이 지치고 무기력감이 밀려왔을 때 글쓰기는 삶의 활력소이자 비타민이었다.

티도 나지 않은 주부의 일에 비해  글쓰기의 결과물은 바로바로 생겼다. 메모장에 끄적인 글, 노트에 길게 쓴 글,  sns에 남겨 놓은 글. 글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내 눈과 마음을 돌봐주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년 동안 열심히 글을 써보자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내년이면 글을 쓴 지 만 5년이 된다.

그동안  많이도 썼다. 기획 출간으로   권을 출간했고, 부크크를 이용해 독립 출판을   했고, 직접 만든 전자책  권도 있다. 글쓰기 모임도 해보았고,  만들기 강의도 했고,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글쓰기 코칭도 해보았다. 개인 에세이 매거진을 만들어 매주 목요일에 뉴스레터도 발행한다.

하지만 이런 결과물들이 **값어치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내 글을 팔아서 먹고 살기는커녕 간식 값도 되지 않는 현실을 자각했을 때, 나는 글쓰기 말고 다른 걸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런 후회를 하기엔 이미 많이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 **크로노스(chronos)는 삶과 씀의 경계를 나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시간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쓰는지, 쓰기 위해 사는지 더 이상 목적과 행위를 따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




평생을 어부로 산 노인 산티아고는 84일째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과거엔 큰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었다. 사람보다 더 큰 바다거북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년이 가져다준 음식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늙은이가 되었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혹독한 삶 때문에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걸 그랬나 보다.”라고 자조 섞인 혼잣말을 내뱉는 노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이 고백과 함께 그는,

“어부가  되는 게 내 타고난 운명이 아닌가. 날이 밝은 대로 잊지 말고 꼭 다랑어를 먹어야지.”

라고 덧붙인다.

후회가 되긴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노인은 현명하다. 그리고 다시 주어진 하루를 위해, 만선을 기대하며 바다로 나간 노인의 **카이로스가 애잔하다.




“작가님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글을 쓰세요?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왜 쓰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글쎄요….”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게 내 타고난 운명이 아닌가. 날이 밝은 대로 잊지 않고
꼭 글감을 모아야지.”



바다에서 노인은 결국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았다. 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동안 상어 떼에게 물고기의 살점을 모두 뺏기고 만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를 부둣가에 남겨두고 노인은 초라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그런 그를 울면서 돌봐주는 소년이 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노인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꼭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가겠노라 약속한다.


노인에게 물고기는 없지만 소년이 남았다.

나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그건 아마도 여전히 무명의 작가인 나에게 여러 방법으로 응원을 해주는 독자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모두 버리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글 쓰는 삶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한다.


미래에 관한 한 그대의 할 일은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값어치 :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분량이나 가치

**크로노스 :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한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

**카이로스 :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기회의 신을 뜻하기도 함


글쓰기를 글쓰기 공동 매거진은 읽는인간, 진아 ,선량 세 명의 작가가 글쓰기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쓰는 공간입니다.

서로 출발한 항구가 다르다 보니 다양한 글쓰기의 항해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드넓은 활자의 바다를 건너 글쓰기라는 같은 곳을 향하게 될 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쓰는 삶을 살길 바라며 쓰는 글쓰기를 글쓰기, 세 작가의  글이 궁금하시다면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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