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by 진아

4월, 새달을 맞아 모든 반 아이들의 자리 배치가 바꼈다. 내가 맡은 고1들은 3월 첫 한 달 동안 모든 반이 번호 순서대로 앉아 있었다. 번호 순서대로 자리에 앉으면 아이들을 파악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앉은자리만 보고도 출석부의 이름과 연결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도 조금은 수월해진다.


모든 반의 자리배치가 바뀌자, 겨우 조금 외웠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들의 빠른 일처리 덕분에, 바뀐 자리의 좌석배치도를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덜 부담스러웠다.


코로나 시국인 데다, 고등학생이다 보니 짝은 없다. 모두 시험 치듯 1열로 앉는다. 그렇다 보니 자리 배치가 바뀔 때 아이들의 희비를 가르는 유일한 조건은 앞자리냐, 뒷자리냐. 중앙이냐, 창가 쪽이냐 하는 '위치'뿐이다. 아이들에게 최악의 자리는 교탁 바로 앞, 그러니까 앞자리인 데다 심지어 중앙이기까지 한! 바로 그 자리다. 그리고 나면 나머지 앞줄 자리가 차악이 된다. 아마 앞자리를 뽑은 아이들은 당황과 좌절을 두루 느낄 거다. 끝내는 한 달만 버텨보자며 스스로를 위안했겠지만.



아이들이 앞자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그 자리는 좀 부담스러우니까. 교사인 나도 학생의 신분이 되어 연수를 들으러 가면, 이상하게도 제일 앞자리만은 피하게 된다. 기습적인 질문으로 인한 당혹감, 연수 시간 내내 집중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 때문이다. 뒷자리에서는 연수 강사와 눈이 마주쳐도 덜 부담스러운데,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코앞에 선 강사와 눈이 마주칠 때면 이상하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기분마저 든다.


아이들은 오죽할까. 선생님이 한 시간 내내 바로 앞에서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없던 긴장도 생길 것이다. 잠시도 딴짓을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고개도 숙이면 안 될 것 같고, 엎드리는 건 당연히 안 될 것이고...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힐 게 분명하다.




교사에게는 넘기 힘든 강이 있다. 사실 강이라기보다는 ‘선’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바로 교탁을 기준으로 가로로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교단’이 있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 대부분을 교단에 서계셨다. 선생님을 보려면 고개를 빳빳이 들어야만 했다. 지금은 교단이 교사라는 직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로만 남았고, 현실에서는 사라졌지만.


교탁을 기점으로 칠판 쪽은 교사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는 교사가 수업에 필요한 여러 도구를 놓을 수 있는 교탁이 있고, 칠판 혹은 전자 칠판, 수업용 텔레비전이 있다. 교탁을 기점으로 학생 자리 쪽은 당연히 학생의 영역이다.


이 두 영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무척 견고하게 분리되어 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그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교권에 대한 도전이다. 칠판 앞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는 선생님의 영역에 사전 동의도 없이 들어서는 학생이 있다면, 그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업 시간에 교사가 그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어떨까.


내 생각에 그것은,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다. 스물대여섯 명이 학생들이 앉아 있는 영역으로 한 명의 교사가 발을 딛기란, 실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 영역에 들어선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도 보아야 한다. 수업 시간에 딴 공부를 하던 학생(그나마 딴 공부면 낫다. 휴대전화를 몰래 보고 있거나, 맥락 없는 딴짓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으니.), 엎드려 잠을 청하던 학생(조는 건 양반이다.), 실컷 설명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깨끗한 활동지와 교과서를 펴놓고 있는 학생(아예 다른 페이지를 펴놓거나, 가끔 다른 교과서를 펴놓은 학생도 있다.)……. 그 아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용기가 없으면, 결코 넘을 수 없는 선이다. 아이들 역시 그런 점을 알기에, 앞자리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뒷자리로 갈수록 교사의 영역에서 멀어지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할 것인가.


나는 선을 넘는 교사다. 매 시간 용기로 중무장을 하고, 깨지고 부서질 각오를 하며 선을 넘고 또 넘는다. 교실에 들어갈 때부터 아예 앞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뒷문으로 들어간다. 꼭 앞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법이 있나. 뒷문으로 들어가서 교실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거다. 간단하게 설명을 할 일이 있더라도 교실 중앙에서 하고, 심지어 가끔은 교실 뒤에서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내 시선이 여기저기에 머무르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딴짓을 하는 아이들과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이 꽤 많다. 그럼 보란 듯이 그 아이 옆에 서서 수업을 한다. 아마 속으로는 욕을 욕을 하고 있겠지만 뭐, 어쩌겠나. 나는 내 도리를 해야하는 걸.


모르긴 몰라도, 아이들은 매시간 ‘(선생)님아, 그 강(선)을 건너지 마오.’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제발 거기 가만히 서서 수업 좀 하시라고요.'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대단한 언변도 없고, 아이들에게 카리스마를 뽐낼 체구도 못 되는 내가 아이들을 수업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아이들의 배움에 함께 하는 것은.


그러니 싫어해도 미워해도 어쩔 수 없이, 다음 주에도 선을 넘을 거다.

그다음 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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