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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0. 2022

오직 학교만이 할 수 있는 일

지난 목요일, 한 달만에 돌아온 야간 자율학습 감독 날이었다. 요즘도 야자를 하느냐며 놀라는 지인들이 많은데, 여전히 야자는 시행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야간 ‘자율’ 학습이라 쓰고 ‘강제’ 학습을 했지만, 지금은 진짜 ‘자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학교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요즘은 야자를 강제로 운영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아이들 세대는 뭐든 강제로 하는 게 어려운 세대이기도 하고(학부모님들 역시 강제로 하는 걸 원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공부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스터디 카페도 너무 많다. 독서실이 아니라, 스터티 카페다. 좌석도 다양하고, 각 자리마다 스탠드부터 허리가 편한 의자에, 음료와 과자까지 제공되는 스터디 카페가 우리 학교 주변에만 해도 서너 개는 된다. 그에 비하면 학교의 자습 시설은.. 음, 말해 뭐할까 싶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자습을 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해도, 뭔가 이유는 있으니 더 좋은 시설을 두고 자습을 신청한 것일 테다. 반마다, 요일마다 신청 인원은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모든 반에 매일에 걸쳐 신청자가 있다. 그러니 학교는 그 아이들을 위해 교실을 열고, 석식을 준비해야만 한다.





목요일 일과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한 뒤 자습이 이루어지는 교실 5개를 돌며 출석체크를 했다. 교무실에서 가까운 1학년 5반 교실부터 차례로 출석체크를 하다가 1학년 2반에 들어갔더니, 딱 한 명의 학생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들어서자 아이는 머쓱해서 웃고, 나는 당황해서 웃었다.    


“애들은? 원래 오늘은 너 한 명이야?”

“아니요. 더 있는데, 아마 기말고사 끝나서 다들 일찍 간 것 같아요.”

“아, 그래? 담임샘께는 말씀드렸겠지?”

“아마 그럴 걸요...?”

“너는 오늘 9시까지 남아?”

“아니요, 오늘 저 석식 시간 전까지만 하고 학원가는 날이에요. 출석부에 표시되어 있어요.”

“그래, 그럼 너 나갈 때 에어컨 잘 끄고 문단속 잘하고 가.”

“네.”     


마지막 교실인 1학년 1반은 이미 불이 꺼져있고, 자물쇠도 잠겨 있었다. 분명히 지난달 자습 감독 때는 1반에서 자습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교무실로 돌아오며 안 바뀐다 안 바뀐다 해도 학교가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석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각반을 돌며 출석을 체크해보니, 반마다 남아 있는 인원이 다섯이 채 되지 않았다. 좀 전에 한 명이 있던 2반 교실은 이미 문단속이 되어 있었다. 몇 안 되는 아이들은 저마다 편한 자리에 앉아 인터넷 강의도 듣고, 책도 읽고, 때론 담요를 덮고 잠도 자면서 자율학습 시간을 보냈다.      


9시 자습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아이들을 모두 보냈다. 불 꺼진 교실을 확인하고 정적이 깔린 복도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3학년 교실을 올려다보며, 저 교실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자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했다. 고3이라고 하더라도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닐 것이다.      


오늘, 채 스물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불을 켜고 에어컨을 가동하며 그 아이를 지도, 감독할 교사(나)까지 배정한 것은 정말 학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낭비’라고, ‘비효율’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는 수익을 내는 곳이 아니다. 효율을 따지는 곳이 아니고,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처한 물질적·정신적 상황과 관계없이 (원한다면)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장소와 인력을 제공하는 곳이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온 나라가 마비되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학교가 문을 닫았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집안에 갇히자 그동안 ‘학교 무용론’을 주장했던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학교는 배움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미성년인 아이들에게 안전한 터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고, 단 한 명의 아이도 타고난 것 혹은 가진 것으로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기도 하다.      


적어도 학교를 평가하는 잣대에만큼은 ‘성과’와 ‘효율’을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한 성과가 없더라도,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도, 대부분의 학교는 오직 학교만이 할 수 있는 책무를 다하고 있다. 아이들이 무사히 학교에 오고, 종일 안전하게 생활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편안할 수 있도록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로지 학교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오늘도 묵묵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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