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와 남편과 늦은 저녁을 먹다가 인터넷 뉴스에 뜬 '속보'를 보았다.
'취학 연령을 만 6세(8세)에서 만 5세(7세)로 낮춘다'
"여보, 이거 무슨 소리야? 학교에서 무슨 얘기 있었어? 나는 고등학교(교사)라서 모르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나도 처음 듣는데?"
"아니, 여보 2025년부터 시행이면 봄이가 해당되는데?"
"어?"
"봐봐, 2025년부터 시행이라서 첫해에는 2019년 1월생~3월생이 2018년생이랑 같이 입학한다잖아."
"뭐라고?"
찜닭에 들어있던 당면이 자꾸만 젓가락에서 미끄러졌다. 눈은 휴대전화를 향해있고, 손만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안 그래도 미끄러운 당면이 수월히 잡힐 리 없었다.
교육부에서 어제 기습적으로(내 느낌에 이건 '기습'이다)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초중고 학제 개편의 핵심사항이 '취학연령을 낮추는 것'이라고 한다. 교육부에서 주장하는 바는 만 5세부터 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1차적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나와 중학교에 근무하는 남편,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지인까지 누구도 이런 개혁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사라면 학교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 중 누구도 이런 상황을 알지 못했다. 물론 취학연령을 낮추고 학제를 개편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바로 시행계획을 발표할 만큼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듣지 못했다. 당장 2년 후에 벌어질 일을 최소한의 의견수렴도 없이 바로 시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황스럽다.
다음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내 아이가 2019년 1월생이니 나는 이 일의 당사자인 셈인데도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설문의 대상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공론화의 과정조차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육부에서는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해 취학연령을 낮춘다고 한다. 과연 앞뒤가 맞는 말인가.
지금 초등교육 입학 전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글교육을 마친다. 유치원에서 한글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일단 초등학교 1학년에 한글을 모르고 입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대부분의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입학 전에 한글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 입학 연령이 낮아지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배우게 될까? 감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한글교육 연령이 6세로 당겨질 것 같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한글은 떼서 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길 것이고, 결국 사교육 연령이 하향되면 하향되었지 공교육의 책임을 확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교육격차를 줄이기는커녕, 교육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친한 지인이 지금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데, 배변 뒤처리가 잘 되지 않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45분 내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불가능해서 실제 수업은 25분 내외로 이루어지며,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도 상당하다고 한다. 사실 초등 1학년 담임교사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런데 7살에 입학을 한다니? 초등 1학년 담임교사는 교육이 아니라 보육을 해야 할 것이며, 수업이 아니라 돌봄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게 과연 합당한가?
돌봄 공백을 줄이겠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지금 유치원은 9시 등원 3시~4시 하원까지 오전 수업과 오후 방과 후 활동으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보고 있지만, 초등만 가더라도 12시면 하교를 한다. 돌봄 교실의 질은 결코 유치원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유치원의 오후 시간 돌봄으로도 부족해서 7세까지 어린이집을 보내는 부모들도 많다. 그런데도 7세 입학이라니? 7세에 12시면 하교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렇게 엄청난 일은 포털사이트나 뉴스에 도배되어도 마땅찮은데,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다. 육아 커뮤니티나 교사 카페에서는 뜨거운 감자라지만, 그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취학연령이 낮아지는 문제는 비단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학교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들만의 일이 아니다. 취학연령이 낮아진다는 것은 졸업 연령이 빨라진다는 것이며, 사회로 나가는 연령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미성년과 성년을 구분하는 연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다시 선거권, 촉법소년 등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대로 정책이 시행된다면, 2017년 3월생인 첫째와 2019년 1월생인 둘째는 졸지에 연년생이 되어 학교를 다니게 된다. 둘째는 지금 어린이집에 함께 다니는 친구들 중 몇과 함께 입학을 할 것이고, 몇은 갑자기 동생이 되는 일을 경험해야 한다. 둘째와 같은 해에 태어난 친정 조카 하나는 2월생이라 함께 입학하는 친구가 될 것이고, 시댁 조카 하나는 6월생이라 (입학 연도상) 한 해 차이가 나는 동생이 될 것이다. 둘째의 동네 언니 오빠들 중 일부는 갑자기 한 반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야 할 것이다.
이 혼란을 어떻게 설명하고 받아들이게 해야 할지 벌써 막막하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혼란도 당혹스럽지만, 사회 전체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정말 이대로 우리 둘째는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걸까? 두 살 차이 오빠와 한 학년 차이 남매가 되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