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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01. 2022

아이들 사이의 관계성을 살피는 일

모둠 수업이 주를 이루는 내 수업에서, 모둠 편성은 한 학기 수업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식으로 모둠을 짜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입과 귀가 열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입과 귀를 연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의미다. 그것은 곧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모둠을 짤 때 수업 태도와 성적을 적절히 고려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 그러면 아무래도 성적이 좋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모둠 활동을 주도하기 때문에 교사로서 모둠 수업을 이끌기가 좀 수월했다. 문제는 그렇게 모둠을 짜면 상위권 아이들이 무임승차하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었다. 하위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들의 역할이 미비하다고 생각해서 모둠 활동에 능동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모둠이 짜지면 모둠 안에서 묘하게 서열이 생겼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의 성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때문에 교사가 성적을 고려해서 모둠을 짰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그 자체에 자존심 상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요즘 모둠을 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성’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아이들의 관계성이 상당히 달라졌다. 한 반에 있어도 ‘친구’ 아닌 경우가 많았다. ‘반 친구’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졌다. (반 친구보다 반 아이가 자연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반에서 일 년을 생활하더라도 각별사이가 아니라면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친구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한 학기쯤 지나면 자기 반 친구들의 이름과 번호를 외우는 일이 많았다. 외우려고 해서 외운다기보다는, 한 학기쯤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였다. 지금은, 같은 반인 데도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거짓말 같은 일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자기와 친하다고 생각하는(마스크 속 얼굴을 공유하는) 친구 외의 반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진짜 관심이 없는 것인지,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 그렇다.


이런 성향의 아이들과 모둠 수업을, 대화가 중심이 되는 수업을 하려고 했으니 1학기 때는 정말 힘이 들었다. 나도 아이들과 관계가 끈끈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임의로 모둠을 구성하기가 어려워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모둠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한 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된 지금은 아이들 간의 관계성이 눈에 보인다. 친한 무리도 눈에 띄고, 자세히는 몰라도 서로를 불편해하는 아이들도 눈에 들어온다. 성향이 잘 맞을 것 같은데 기회가 없어서 대화 한 번 해보지 않은 듯한 아이들도, 어떤 기회가 있어도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도 보인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모둠을 편성할 때는 최대한 그런 면을 고려했다. 나 혼자만의 의견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내밀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쪽지도 받았다.      


쪽지에는 ‘함께 모둠 활동을 해보고 싶은 친구 / 같이 모둠을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친구’와 ‘어떤 이유에서든지 함께 모둠 활동을 하기 어려운 친구(다툼이 있었거나, 갈등 상황이 있었거나 등등)’를 쓰게 했다. 절대 비밀 보장이라는 약속도 했다. 아이들은 솔직했다. 짐작했던 문제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아이들이 낸 쪽지를 바탕으로 모둠을 짜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서로 갈등 상황이 있었던 아이들끼리의 모둠은 무조건 피했지만, 그 대신 서로 다른 무리라 친하지 않은 아이들끼리는 둘둘씩 짝을 지어서라도 한 모둠에 편성했다.




모둠을 발표하는 날, 아이들은 무척 떨려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떨려하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아이들은 ‘샘! 한 학기 수업이 걸린 거예요!’라며 발끈했다. 괜한 말을 했다 싶어 얼른 모둠을 공개했다. 당황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저항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적어도 8개 반중 7개 반은 그랬다.     


한 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모둠을 발표했더니, 두 모둠의 아이들이 사색이 되었다. 분명히 저희들이 써낸 쪽지를 모두 반영해서 짠 것인데 왜 저런 표정일까 생각하며 그 차시 수업을 마쳤다. 역시나 예상대로 두 모둠의 리더 역할을 맡은 두 아이가 교무실을 찾아왔다.


한 아이(편의상 A)는 모둠 내에 자신을 제외한 세 아이가 자기 의견을 전혀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라 이대로는 모둠 활동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다시 보니 A의 의견이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반 전체에 모둠을 공지한 상황에서 어떻게 교체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했다. A를 돌려보내고, 다른 아이(편의상 B)와 마주했다. B는 정말 울상이 되어서 모둠에 있는 남학생과 1학기 때 교제를 하다가 헤어졌다고 했다. 맙소사. 이성교제까지는 다 고려를 못했다. 왜 쪽지를 써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확률이 너무 떨어져서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며칠 뒤 A 모둠의 한 명(조용한 아이 중 한 명)과 B 모둠의 한 명(B와 이성교제를 했다는 남학생)을 불러서 둘이 모둠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A모둠 아이는 B모둠에 더 친한 친구가 있다며 좋아했고, B모둠 남학생은 당연히 반색했다. 다행히 큰 무리 없이 두 모둠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다음 시간부터 바뀐 모둠으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모둠 구성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과 한 발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몰랐던 아이들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 누구와 함께 할 때 자기 에너지를 가장 잘 쓸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교사의 역할이 무엇일지, 자주 고민한다. 교사를 교과 내용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풀이하면, 나는 별로 좋은 교사가 못 된다. 아는 것(교과 내용)을 재밌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 영역은 더 잘하는 분들께 양보하고 싶다. 다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어른이고 싶다. 아이들의 관계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학교에 오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안내자이고 싶다. 그런 일이라면 앞으로도 열심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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