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같은 선생님이라니.

by 진아

1월은 고등학교 교사에게 방학이지만 방학이 아닌 달이다. 학생부 전형으로 대학에 응시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지방일수록 더더욱), 생활기록부 기재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과 담당 교사는 ‘교과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하 교과세특)’을 학생 한 명당 1500바이트(글자수로는 500자 정도) 써야 하고, 담임교사의 경우에는 창의적 체험활동(자율활동, 진로활동, 봉사활동)의 특기사항과 학생들의 1년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까지 써야 한다. 그나마 나는 올해 담임이 아니라서 부담이 덜한 편인데도, 200명의 교과세특을 쓰는 일이 가볍지 않다.


일 년 동안 국어 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때마다 자료도 잘 모아두었는데 이것을 적절한 언어 표현으로 바꾸어 학생들의 성취와 성장이 드러나게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우스갯소리로 생활기록부 쓰는데 1년 치 에너지의 절반은 쓰는 것 같다고 하는데, 정말이다. 내가 쓴 한 줄의 문장이 모든 학생의 입시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허투루 쓸 수 없다. 아이들이 진행한 활동 과정과 내어놓은 결과물을 두루 아우르고, 수업 태도 전반을 고려하면서도, 진로 분야와 잘 연결될 수 있도록 매끄럽게 써야 하는데…….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도 몇몇 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일 년치 활동 결과물을 놓고 한 명 한 명의 교과세특을 쓰다 보니, 그때 당시의 아이들의 말과 행동들이 고루 떠오른다. 설득하는 글쓰기 활동에서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상이던 아이의 모습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에서 책을 읽다 잠들어버린 아이들의 모습, 그런 아이들을 애써 깨우고 매시간 독서 일지를 쓰게 하던 내 모습도. 문학으로 세상 보기 활동에서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독서 토의를 했던 장면과 소설을 읽은 후 아이들이 제출한 독서 일지들, 매 일지마다 속내를 보여준 아이들과 열심히 코멘트를 쓰던 내 모습까지. 어제 일같이 선명한데 벌써 수개월이 지난 일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과정도 쉽지 않았고 그것을 녹여 기록으로 남기는 지금도 쉽지 않지만, 수업 장면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니 그래도 지난 일 년이 참 좋았구나 싶다.




12월, 방학 전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던 한 반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젤 앞자리에 앉아 늘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던 남학생 한 명과 대화를 나누었던 일이다.


“샘! 오늘 마지막 수업인데 자유시간 주면 안 돼요?”

“자유시간을 주면 뭐 하려고? 책이라도 읽을 거야?”

“샘, 책은 많이 읽었잖아요. 쉬는 시간에 하고 있던 게임이 있는데요. 이것만 딱 마무리하면 안 될까요?”

“야, 그래도 수업 시간에 게임은 말도 안 되는데?”

“샘, 진짜 오늘 방학 전날인데. 딱 한 판만요!”

“그래도 게임은 좀 그렇지! 휴대전화 꺼내서 게임하면 내가 사진 찍어서 증거 다 남긴다!”

“에이, 샘! 샘이 그러시면 서운하죠. 샘은 우리한테 오아시스 같은 존잰데. 사막의 오아시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찰나의 고민이 사라진 자리에 웃음만 남았지만. 아이는 나에게 오아시스라는 엄청난 수식어를 선물했다. 설명은 이랬다. 사막같이 막막하고 팍팍한 학교생활에 내 수업이, 나와의 대화가, 나라는 존재가 오아시스처럼 숨통 트이는 것이었다고.


사탕발림으로 한 말일지라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이 몰려왔다. 꼭 그만큼 무겁고 책임감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했지만! 지난 일 년을 돌아보았다. 생각해 보니, 좋았다. 오랜만의 복직이라 많이 두려웠던 시작에 비해, 아이들과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은 일 년이었다.


“샘, 샘은 어떻게 애들하고 그렇게 잘 지내요?”


동료 선생님이 물은 적이 있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했던 대답은 이것이었다.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거든요. 애들이 그걸 아는 것 같아요.”


생각해서 한 대답이 아니었다. 질문을 받자마자 떠오른 답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과 수다 떠는 시간도 좋고, 책을 읽는 시간도 좋고, 수업을 하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지만, 그래도 좋다. 엄마가 되고 나서 만난 아이들은 특별히 더 귀하다. 이 아이들이 집에서는 얼마나 다 귀한 아이일지 생각하면, 누구도 허투루 대할 수가 없다. (엄마가 된 후로 내 꿈은, 내 아이가 만났으면 싶은 교사상에 가까운 교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주 운이 좋은 교사다. 가끔은 교사가 아무리 사랑을 퍼부어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교묘하게 교사를 괴롭히는 아이도 있다. 각종 사건 사고로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아이도 있고,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날카로움으로 교실을 살얼음판으로 만드는 아이도 있다. 감사하게도 나는 사랑을 주는 만큼 돌려주는 아이들을 만났다. 이건 운이 좋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앞으로도 나에게 운이 허락한다면,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싶다. 답답함을 토로할 수 있고, 도와달라 말할 수 있고,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으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기록부를 빨리 끝내놓고! 새 학기 준비를 하고 싶구나!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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