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책의 퇴고가 끝났다. 작년 1월, 두 번째 책인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의 투고 과정에서 한 출판사로부터 전혀 다른 기획을 제안받았다. 그 출판사의 대표님은 글쓰기 원고는 출판 계획이 없지만, 내가 쓴 한 꼭지의 샘플 원고 진행방식과 이전까지 브런치에 쓰고 있던 '시로 쓰는 육아일기'에 관심이 있으니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원고 작업을 해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처음 그 메일을 받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한참을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원고 청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시간이 꽤 흐른 뒤의 일이었다.
대표님이 제안한 원고 기획은 '시'를 테마로 하는 육아&자녀교육서였다. 대략적인 기획서를 전달받고 내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샘플원고 두 편을 써 보냈다. 아이들과 하는 대화를 기록해 두었던 것을 활용해서 에피소드를 쓰고 시를 연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서가 도착했고, 세 번째 책의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을 퇴고하면서, 5년 만에 복직한 학교에도 적응하면서, 세 번째 책을 썼다. 물리적 시간은 현저히 부족했다. 잠을 줄였고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원고를 썼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카페로 도서관으로 원고 작업을 하러 갔다.
수백 편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동안 썼던 육아일기를 모두 꺼내어 읽었다. 에피소드가 있어도 연결할 만한 시를 찾지 못하면 쓸 수 없었다. 좋은 시를 만나도 내 이야기와 적절히 버무려지지 않으면 그것 또한 쓸 수 없었다. 쓰이지 못하는 이야기가 쌓이고, 담을 수 없는 시가 쌓였다. 최선의 연결고리를 찾아 생각과 시를 엮어냈다.
12월 초, 계약서에 사인한 지 8개월 만에 초고를 보냈다. 연말을 가볍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다. 일단 초고를 써냈다는 것은 계획한 목차에 해당하는 원고는 어떻게든 썼다는 말이므로 가벼웠다. 퇴고의 무게를 알기에 마냥 가볍지는 못했지만.
한 달 만에 수정의견을 받았다. 초고를 쓰며 스스로 아쉬웠던 원고는 여지없이 수정사항이 많았다. 한데 생각지 못한 수정도 많았다. 편집자의 의견은 첫 독자의 시각을 담고 있으므로 너무너무 중요했다. 아무래도 내가 기획해서 쓰기 시작한 원고가 아니다 보니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맨 게 첫 독자(편집자)의 눈에는 고스란히 보인 게 분명했다.
한 달 동안 퇴고를 했다. 초고의 삼분의 일 이상이 버려졌다. 그만큼 새로 쓴 원고가 많았다. 문장이나 문단 다듬기는 다음 문제였다. 없던 꼭지를 새로 만들어 쓰고 비슷한 꼭지를 통합하거나 삭제했다. 초고를 도려낼 때마다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마냥 아쉬워할 수는 없었다.
퇴고는 작가의 시선으로 쓴 초고를 독자의 시선으로 새로 쓰는 작업이다. 내 기준에서 좋은 글, 내 기준에서 잘 쓴 글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기준에서 읽고 싶은 글,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글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을 100% 독자의 시선에서 수정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한 한 덜어내고 새로이 담아내고자 애썼다.
1교(첫 퇴고)를 마친 글을 보내고, 답이 오기까지 2주쯤. 초고를 보냈을 때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긴장이 되었다. 초고는 수정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둔 원고이지만, 이미 1교를 마친 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1교에서도 편집자 눈에 수정사항이 많이 보인다면 계속해서 고쳐나가야겠지만, 1교에 온 힘을 쏟아부었던 나로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랐다. 그리고 메일을 받았다.
"원고가 좋습니다, "
"처음 계획했던 자녀교육서의 느낌보다 에세이 느낌이 강했지만, 원고 내용이 좋아서 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어깨 으쓱하셔도 될 것 같아요."
메일을 읽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일 년을 준비한 원고이기도 했지만, 시와 아이들 이야기라는, '국어교사' 이자, '엄마'라는 두 정체성을 모두 녹인 원고라 쓰는 내내 쉽지 않았다. 나로서는 큰 산을 한 번 넘은 듯한 원고였기에 기쁨이 남달랐다. 정말이지,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한 방에 씻기는 메일이었다.
다시 한 번, 자잘한 수정사항까지 수정해서 2교 원고를 보내고, 일주일을 꼬박 앓았다. 열감기에 목감기, 장염까지. 그동안 아플 틈도 없이 달린 몸이 '이때다!' 싶었는지 열심히도(?) 아팠다.
탈고.
원고를 마치다라는 뜻이지만, 한자어 하나를 달리하면 괴로움이 끝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고를 쓰는 내내 달콤하게 괴로웠다. 이제 달콤한 괴로움과도 이별이다. 탈고!
어쩌다 보니 세 권의 책을 이어서 쓰게 되었다. 쉴 틈 없이 달려온 삼 년을 돌아보니,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이 깊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주변을 살피는 마음도, 현재를 대하는 마음도, 미래를 꿈꾸는 마음도.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한 걸음씩, 한 폭씩, 나아가고 깊어진다면 나이를 먹어가는 일도 늙어가는 일도 마냥 서글프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