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이였다.(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7세인 지금은 훨씬 덜해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적어도 자기 기준에서는) 완벽하게 해내야 직성에 풀렸고,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는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아이가 특히나 힘들어했던 것은 미술활동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물감 놀이, 색칠 놀이 많이도 했건만 미술 관련 활동에 유난히 마음을 열지 못했다. 색칠 놀이를 할 때면 선밖으로 색연필 자국이 조금이라도 튀어나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색칠을 했더라도, 거의 완성 직전이었더라도, 색연필 자국이 조금이라도 튀어나가면 “나 이거 안 할래”라며 색칠 책에서 해당 페이지를 찢어버릴 만큼. 그래서 강박을 의심할 만큼.
유치원에 가자 그림 그리기 활동이 많았다. 아직 한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기표현 활동으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그림 그리기였다. 6세(만 5세)가 된 다른 아이들은 어설퍼도 사람의 형태를 그렸고, 눈코입도 얼추 제 위치에 그려냈다. 꽃도, 나무도, 무지개도, 나비도. 저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그리더라도 그리기 자체에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우리집 첫째는 달랐다. 매주 월요일이면 주말에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정말 힘들어했다. 선생님이 따로 전화를 하셔서 말씀해 주실 만큼. 아이는 그림 그리기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두가 그림을 잘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선생님의 설명은 달랐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시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눈코입이 제자리가 아니더라도, 코가 없는 얼굴이라도, 자기는 꽃이라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엇이라도 아이들은 그냥 슥슥 그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유난히 우리 첫째는 그 ‘슥슥’ 자체를 힘들어한다고 하셨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둘째 덕분에 집에서도 자주 미술 놀이를 했는데, 그때마다 자신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첫째에게 말해주었다.
“그래, 누구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 수는 없지. 사실 엄마도 어렸을 때 그림을 너무 못 그려서 그림 그리기가 너무 싫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림에는 정말 정답이 없어. 그림책마다 도 그림이 다 다르잖아?”
아이는 매번 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야, 엄마. 그림에는 정답이 있어. 내 친구 00 이는 진짜 그림을 잘 그려. 사람도 잘 그리고, 꽃도 잘 그리고, 색칠도 진짜 잘해.”
아이에게는 그 친구처럼 정확한 묘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칠해진 색칠이 정답이었다. 자기는 그렇게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아예 그리지 않음을 선택한 아이였다. 도리가 없으니, 때마다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어. 나를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야. 지금 네가 기분이 좋을 때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는 것처럼. 나중에 네가 글자를 알게 되면 글로 쓸 수도 있고, 악기를 배우게 되면 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고. 그냥 그런 표현법 중에 하나일 뿐이야.’
아이는 내 말을 받아들이는 듯했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완벽하지 못한 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곤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며칠 전 아이가 A4용지 한 장을 꺼내더니 거실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엄마, 그림엔 정답이 없지?”
‘와우! 드디어 나의 말이 머리로 들어간 건가?!!!’
“그럼, 그림엔 정답이 없지~!”
흥분을 감춘 채로, 하지만 목소리 톤은 이미 한껏 상기된 채로 아이의 질문에 답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아니야, 정답이 있어.”였다. 여전히 도돌이표구나 낙담 아닌 낙담을 하려는 찰나.
“내가 선택하는 게, 정답이지~!”
진심으로, 울 뻔했다. 어쩜 이런 말을!
“사랑아, 맞아. 정말 그게 정답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네 마음이 끌리는 대로, 네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게 정답이야. 그런데 그런 멋진 걸 어떻게 알았지?”
“다 알지. 이젠 알아. 나도.”
아이는 뭐 이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으쓱하더니 하얀 A4용지에 쓱싹쓱싹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거실창밖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성장을 눈으로 귀로 확인하며 얼마나 감동하고 감격했는지.
얼마 후 유치원 상담이 있었다. 담임선생님께 아이가 그림 그리기 활동 시간에 어떻냐고 여쭈어보았다. 선생님도 작년 담임 선생님에게 사랑이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생각도 하지 못했을 만큼, 아이는 어설퍼도, 부족해도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있다고 하셨다.
물론 아이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림 그리기 활동에 부담을 덜었다는 표면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일을 해내는 태도가 중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해보면 되지’하는 그런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