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받아주기 어려운 날에는

이 시를 읽는다.

by 진아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기 어려운 날이 있다. 상황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면, 아이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짜증을 냈고 아주 조금 더 떼를 썼을 뿐인데……. 그 ‘아주 조금 더’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찰랑이는 물병에 한 방울의 물을 더 떨어뜨리면 왈칵 넘쳐버리는 것과 같달까. 마치 내가 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면, 우는 아이의 모습이 더는 애처로워 보이지 않는다. 제발 그만하라고, 제발 멈추라고 같이 소리치고 싶은 마음만 부풀어 오른다.




며칠째 아이의 감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밤새 코가 막혀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더 나빠지면 안 되니 바깥 활동도 전혀 할 수 없었다. 등원은 했지만, 친구들이 바깥 놀이를 간 시간 동안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어야 했다. 내내 코가 막혀 있었으니 밥맛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어야 하니 좋아하는 과자도 빵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아이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몸은 둘째 치더라도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봄햇살을 받지도 봄꽃을 담지도 못하는 마음이 봄빛일 리 없었다.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이해해야 했고, 받아주어야 했다. 좁디좁은 이런 마음으로 무슨 엄마라고, 무슨 어른이라고.


아이의 짜증이 극도로 심했던 밤, 결국 아이의 온도와 꼭 같은 온도로 함께 목소리를 높인 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들지 못한 밤을 보냈다.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일정해질 때쯤, 이불을 걷어 내렸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을 만큼 미안함이 싹튼 밤, 주영헌 시인의 ‘송곳’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송곳
- 주영헌

빈 몸에 취기로 둥지를 튼 새벽
몸 안이 절절 끓고 있다
거미처럼 천정으로 기어올라간 그림자가 투명한 집을 짓는
새벽이 터져 환한 아침
순서를 앞지른 아이가 내 옆에서 거꾸로 자고 있다
추위를 쫓고 덮어준 이불 사이로 손가락이 뾰족하다
검게 때가 낀 손톱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겪어 나가는 모든 일은 다 깰 때가 있다
어느 지점을 봉합한 아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일
잠시 시들었던 아이의 몸에선
시든 꽃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들이 의사의 입에서 옮겨지고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놀다 온 두 손
억세게 철봉을 잡았던 손가락도 기진한 듯
아비의 손가락 마디 하나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병실이 놀이터라도 되는 듯
손톱 사이엔 놀이의 흔적이 얼룩져 있다
수액이 줄어드는 시간
그만큼 비워진 아이의 시간이 몸속에 차오르고 있다


화자는 아버지다. 지금 화자는 아이가 누워 있는 중환자실에서 아이의 손톱을 내려보고 있다.‘아침까지만 해도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놀다 온 두 손 / 억세게 철봉을 잡았던 손가락’이라는 것으로 보아, 아이는 아침까지만 해도 놀이터를 신나게 내달리던 모습이었다. 어쩌자고, 아이는 흙이 고스란히 박힌 손톱을 하고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지. 아이는 화자의 '손가락 마디 하나를 잡지 못한' 채 수액에 생의 시간을 맡기고 있다. 깎아줄 때가 된 손톱을 품은 채로.



읽을 때마다 마음이 수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시이다. 엄마가 된 후로 가장 두려운 일은 아이를 잃는 일이 되었다. 아이가 아픈 일도 마찬가지다. 작은 아이의 손에 링거를 꽂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린 일이다. ‘송곳’을 처음 읽었던 날도 울었고, 필사를 했던 날도 울었다. 그 뒤로 몇 번을 읽어도 때마다 눈물방울을 떨어뜨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도로 이미 축복이라고. 그 진부한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말보다 감각으로 먼저 전해지니까.


아이의 감기가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이 정도라도 먹으니 다행이라고, 엄마 아빠가 출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등원하면서도 잘 가주어서 다행이라고, 바깥놀이는 못해도 친구들과 잘 놀다 오니 다행이라고, 이 정도면 모든 것이 ‘다행’인 셈이었다. 어쩌면 아이는 그만큼의 ‘다행’을 지키느라 모든 에너지를 썼던 건 아닐까. 때문에 엄마에게 다정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게 아닐까. 기분 좋게 밥 먹을 에너지조차 없었던 건 아닐까. 행복하게 잠들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그런 아이를 받아주지도, 안아주지도, 품어주지도 않은 내가 아이에게 미안해할 자격이나 있을까.




“봄아, 손톱 깎자. 엄청 많이 길었지?”

“자, 엄마.”


아이가 단풍잎보다 붉고 고운 손을, 별빛보다 환하고 예쁜 손을 내민다.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아이의 손톱.

더 두었으면 손톱 밑이 금세 새까만 흙으로 더럽혀졌겠다 싶은 아이의 손톱.

깎아줄 때가 된 손톱.


이 손톱을 무사히 깎아줄 수 있어서. 때맞춰 깎아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여긴다.


“더 길었으면 다칠 뻔했다. 예쁘게 잘라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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