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와의 하루. 그래도 기적인 이유.

by 진아

곁에서 내내 뒤척이던 둘째의 몸이 너무 뜨거웠다. 저녁에 해열제를 먹은 후로 다시 열이 오르지 않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웠는데... '39.1' 체온계의 빨간 불빛은 꼭 내 마음에 켜진 붉은 신호등 같았다. 뒤척이는 아이를 살짝 일으켜 해열제를 먹였다. 꼴딱꼴딱 해열제를 넘기고 다시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이 밀려왔다.


자는 내내 끙끙 앓더니 열이 오르느라 그랬구나.

언제부터 열이 난 거지?

계속 팔베개를 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안 거지?

내가 너무 깊이 잠이 들었나?

더는 열이 안 올라야 할 텐데.

저녁때 미리 학교에 연락할 걸 그랬나?

내일 수업이 몇 개지?

아침에 전화해서 또 아이가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질 것 같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는지. 아픈 아이에 대한 걱정, 내일 연가를 써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걱정, 수업을 빠지면 중간고사까지 진도에 무리가 없을까 걱정, 동생이 집에 있는다면 자기도 집에 있고 싶다고 말할 게 뻔한 첫째에 대한 걱정까지. 품을 파고드는 둘째를 안고, 온갖 걱정에 사로잡힌 채 달아나버린 잠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애쓴 밤이었다.



해열제를 먹은 둘째는 그 뒤로 잘 잤다. 그랬으니 나도 다시 잠든 후로는 깨지 않고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래봐야 서너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깨기 전에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수업 조치를 하기 위해 담당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아이와 나를 더 걱정해 주시는 마음에 또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나의 결근으로 인해 몇 분 선생님들은 보강을 하셨을 텐데, 죄송한 마음은 일단 넣어두기로.


눈을 뜬 아이는 힘이 없었다. 여전히 열이 났고, 다시 해열제를 먹였다. 다행히 첫째는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였고, 스스로 등원준비를 잘해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첫째를 등원시키고, 같은 길을 되돌아 집으로 왔다. 뒤늦은 아침을 먹고 약을 먹였다.


“우리 오늘은 몸으로 무리하게 놀 수 없어. 지금은 봄이가 많이 아프니까, 최대한 몸을 쉬게 해줘야 해.”

“그럼 엄마, 책 읽어줘.”

“좋아. 오늘은 봄이가 읽어달라는 만큼 읽어줄게.”


둘째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왔다. 꺼내오는 대로 열심히 읽어주었다. 함께 읽은 책이 탑처럼 쌓여갈 때쯤, 아이는 세이펜을 꺼내와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곁에서 나도 책을 읽었다. 어느새 아이의 몸은 뜨거움에서 따듯함으로 제 온도를 찾아갔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생각하는 중에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반찬 택배가 도착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마치 오늘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측한 것처럼.


아이와 함께 아이스박스를 풀고, 식탁으로 반찬을 날랐다. 예쁜 접시에 조금씩 덜어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책을 읽었고(글자를 모르니 읽는다는 표현은 부적절한가), 나도 책을 읽었다.


밤새 깊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아이는 오후가 되자 떼를 부렸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면서도 길어지는 떼를 마냥 받아주지 못했다. 그래도 끝내는 품을 파고드는 아이를 진하게 안아주었다. 한참을 안고 있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볼에 입을 맞추더니 스르륵, 품에서 빠져나갔다. 아이가 안겨 있던 자리에는 아이의 온기가 진하게 남았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의 뒤를 쫓았다.


색칠 놀이도 하고, 비즈 만들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또 다른 책도 읽고 ……. 그러다 보니 남편이 첫째를 하원해서 돌아왔다. 무사히 하루가 지고 있었다. 밤잠을 설치며 했던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감사하고도 (생각보다는 훨씬) 평화로웠던 하루가.


실로 오랜만에 둘째와 둘이 보낸 날이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아팠지만, 오늘 하루가 영 나쁘지는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자랐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우리가 어쩌면 오랫동안 같은 취미(책 읽기)를 공유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품은 날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한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출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었다.



며칠 전 둘째와 손을 잡고 공원을 걷던 중이었다. 봄바람에 꽃비가 쏟아지던,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엄마,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와, 진짜? 봄이는 소원이 있어?”


아이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뜸을 들이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응,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잘 사는 거.”

울컥했다. 내가 생각한 다섯 살 아이의 소원은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것이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것, 더 나아가봐도 재밌는 곳에 가고 싶다는 것 정도였다. 아이의 소원은, 우리 가족의 행복이었다. 무슨 말도 더 할 수가 없어서 아이의 눈높이로 몸을 낮춰 아이를 끌어안아주었다.


“엄마도, 봄이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사실 엄마 소원도 봄이랑 똑같거든.”


아이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이와의 시간은 정말 쏜살같다. 가만히 누워 손발을 휘적이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아가가, 벌써 이만큼이나 자라 가족의 행복을 소원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며,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참, 기적 같은 일이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아픈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잊고 싶지 않은 하루를 기록하는 이 순간도, 어쩌면 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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