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아이들을 보는 기쁨

by 진아

“봄아, 이제 4단계야. 이번에는 발로만 잡는 거다!”

“알았어. 오빠! 으아악, 도와줘 오빠!”

“오빠 출동!!! 성공!!”

“예~~~~!!!”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대화에 호기심이 닿았다.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열린 욕실 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두 아이는 욕조에 250ml짜리 생수병을 가득 떨어뜨려놓고는, 그것을 발로 잡아 욕조 테두리에 올려 세우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진지하고 신나게 노는지, 내가 고개를 들이밀고 놀이를 염탐(?)하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그 생수병들로 말할 것 같으면, 첫째 아이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나눠 마신 뒤, 친구들이 버리는 생수병까지 다 모아 집에 가져온 것들이었다. 벌써 2주째 생수병 몇 개로 얼마나 다채롭게 노는지, 어른인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생수병에 물감을 푼 물을 담아 카페 놀이를 했다. 노란 물감을 풀어 망고 주스를 만들고, 빨간 물감을 풀어 딸기 주스를 만들었다. 보라 물감은 포도 주스, 남색 물감은 블루베리 주스, 검은 물감은 커피, 빨간 물감에 하얀 물감을 섞은 것은 딸기 라테라고 했다.(이 섬세한 설정!) 하루에 한 개씩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지. 색색의 주스(?)가 들어있는 생수병을 욕조 테두리에 세워두고는 나더러 커피를 사러 오라고도 하고, 저희들끼리 사고파는 역할극도 하며 한참을 놀았더랬다.

주스 사세요~!


카페 놀이가 지겨워질 때쯤이 되자 아이들은 생수병을 욕조 물에 퐁당퐁당 빠뜨리고는 상어 놀이를 했다. 욕조의 물을 받는 동안 수압에 따라 빙글빙글 도는 생수병을 보고는 “으악! 상어다~! 우리 집에 상어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느 정도 물이 받아지고 난 뒤에는 둘이 욕조로 들어가서는 상어들(생수병들)에게 잡아 먹히면 안 된다고 몸을 요리조리 피하는 놀이를 했다. (아이들의 초상권이 있어서 사진을 못 올려 아쉽다.)


그렇게 진화하던 놀이가 오늘은 또 새로운 양상의 놀이가 된 것이었다. 오늘의 놀이를 한참 지켜보면서 파악한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1단계, 몸에 생수병이 닿지 않도록 피하기
2단계. 떠다니는 생수병을 손으로 잡아 욕조 테두리에 올리기(둘 중에서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잡아 올리는지 내기하기 - 경쟁 놀이)
3단계. 손을 쓰지 않고 발로 생수병을 잡아서 욕조 테두리에 올리기. 생수병이 물속에 있을 때는 발로 잡지만 욕조 테두리에 올린 후에는 손으로 바로 세우기(여기서부터는 협동 놀이)
4단계. 3단계에서 진화한 형태로, 욕조 테두리에 올려 세울 때에도 손을 쓰지 않고 발로만 하기.


나름대로 꽤 체계적인(?) 단계가 있고, 경쟁과 협동을 적절히 배치한 놀이였다. 얼마나 집중해서 발로 생수병을 잡고,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발 네 개에 동시에 힘을 주는지. 지켜만 보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너무 재밌게 노네. 진짜 재밌는 놀이를 만들었구나!”

“엄마, 이거 내가 만든 놀이야. 봄아, 재밌지?”

“응. 엄마 오빠가 만든 놀이야. 진짜 재밌어. 엄마도 해볼래?”

“엄마가 욕조에 들어가면 놀이가 안 될 것 같은데? 엄마는 구경할게. 둘이 힘 합쳐서 다 올려 봐.”


두 아이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격정적으로 놀았다. 하마터면 같이 놀자며 욕조에 뛰어들 뻔했을 만큼, 너무나 재밌게. 잘 노는 아이들의 모습만큼 예쁜 모습이 또 있을까. 흐뭇한 마음에 한참을 지켜보았다.

오늘 아이들이 발로 잡아 세워 둔, 색색의 주스(?)들.


다섯 살과 일곱 살, 남매가 사는 우리 집에는 완제품인 장난감이 거의 없다. 그 흔하다는 변신 로봇 하나가 없고, 변신 자동차도 없다. 캐릭터 피규어도 거의 없고(찾아보니, 미니특공대라는 만화 캐릭터 피규어 네 개가 전부다), 마론 인형도 없다.


2년 전쯤, 집에 있던 완제품 장난감들을 대부분 정리했다. 그 이유는 완제품 장난감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장난감들은 사 온 날 딱 하루만 갖고 놀았다. 길어도 한두 주쯤. 아무래도 완제품은 놀이에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금방 흥미가 시들해졌다.


그 후로도 웬만해서는 완제품 장난감은 사주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갖고 싶다고 하지만, 딱 그때만 지나면 아이들의 욕구가 시들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등에는 블록, 미술 놀이 용품(물감, 클레이, 색종이, 글라스 데코 등) 등을 선물한다. 정해진 방법 없이 놀 수 있는 장난감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른들은 생각하지 못한 놀이를 창조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가장 잘 갖고 노는 장난감은 진짜 장난감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주방용품들(반찬통과 냄비, 그릇, 조리 도구, 지퍼팩 등)과 재활용품(페트병이나 배달음식 용기, 두루마리 휴지심 등), 자연물(나무 막대기, 돌멩이, 모래와 흙 등)이 가장 창의적인 놀잇감이다. 오늘 아이들이 생수병으로 며칠을 신나게 놀았듯이 사실 아이들의 놀이에는 거창한 장난감이 필요가 없다.




"오늘도 재밌게 놀다 와."


어린이집과 유치원 입구에서 아이들에게 하는 인사다. 아이들이 정말로 신나게 잘 놀았으면 좋겠다. 원 없이, 아쉬움 없이 재미난 유아기를 보냈으면 좋겠다. 놀이의 허기가 가득 채워져 배부른 유아기를 보냈으면 좋겠다. 훗날, 그 에너지로 공부도 열심히, 사랑도 충실히, 끝내는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 되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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