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6일. 우리 가족은 제주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내고 있다. 1월 1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왔고, 6박 7일의 일정 끝에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새해가 되어 7살이 된 첫째와 5살이 된 둘째. 두 아이와 이렇게 장기간 여행은 처음이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6박이 장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6박이라고 해도 아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으니.
제주에서의 여섯 번째 밤이자 여행의 마지막 밤. 여행지에서의 사진을 넘겨본다. 우리는 참 많은 곳을 함께 보았고, 참 오랜 시간을 오직 서로와 함께 했구나. 사진 속 우리는 모두 행복하다. 웃고 또 웃고 신나고 또 신난다. 사진에 담지 못한 시간의 우리는.. 음. 음...
유아기의 아이들과 여행을 해본 분들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은 물론 행복했지만, 때때로 고행에 가까웠다.
이 좋은 제주에 와서, 뽀로로 앤 타요 테마파크에 가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 근처 테마파크나 키즈카페에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바다를 보러 가서는 거침없이 파도와 술래잡기하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바다는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애들이 그러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걸 못하게 할 거라면 바다를 보러 가지 않았어야 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100퍼센트 내 잘못이다. 분위기 좋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여유를 즐긴다는 건. 흠.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대구에서도 못하는 걸 제주에서 하려고 했다니.. 쯧쯧.
첫째 아이는 자기에게 재밌는 곳만 가고 싶어 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선 엉덩이가 들썩여 견디지 못했다. 가기 전부터도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짜증부터 부렸다. 평소에도 옷, 신발, 카시트 등이 불편하다고 투정이 잦은 둘째 아이는 겨울여행에서 겉옷을 입지 않겠다고, 카시트의 벨트를 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매번 전쟁 같던 이동시간과 장소마다 이어진 실랑이까지. 생각만으로도 아우. 막상 어디든 도착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신나게 잘 놀았으면서.
여행의 끝자락.
이 고행(?)을 또 하겠냐 묻는다면, (아마 남편은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겠다고 답하고 싶다. 다시 캐리어 3개를 꽉 채워, 아이들과의 여행 가방을 꾸리고 싶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는 여행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아이들과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겠다고.
아이들의 나이와 내 경험을 고려해 보면,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이 여행의 구체적인 장면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어디를 갔었는지 무엇을 보았었는지.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감각만은 분명히 남을 것이다. 숲길을 걷는 내내 잡고 있던 손의 감촉, 겨울 파도의 시린 냉기, 함께 먹은 음식에서 피어오르던 온기, 동백꽃의 붉은 빛깔과 향기, 바다 냄새, 함께 본 별자리, 바다 위로 반짝이던 윤슬. 달리는 차창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던 겨울 찬바람까지.
어린 시절 없던 살림에도 일 년에 한 번 가족여행을 데리고 다녔던 친정엄마 덕분에, 나는 믿는다. 기억보다 감각이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엄마와의 여행이 매번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 자명함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뜨끈해진다. 그것은 그 여행을 준비하고 함께 했던 모든 시간에, 엄마가 나와 동생을 사랑한 마음이 깃들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더라도.
두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몇 번의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서로가 각자의 휴대전화에 고개를 박지 않고, 함께 손을 잡고 걷고, 먹고, 마주 보고, 재잘거리고, 웃고, 울고, 화내고, 화해하고. 그렇게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행을.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러니 다음 휴가에도 이 고행(?), 아니 여행을 떠나야겠다. 가방 가득 아이들의 애착물건을 챙겨, 낯설고 새로운 감각이 가득한 곳으로. 울고 떼쓰는 아이들을 달래어 함께 웃고 달릴 수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