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굉장히 많이 나누는 편이다. “엄마, 놀자~”라는 말에는 딴청을 부리거나 갖은 핑계(?)를 대며 쉴 궁리를 하기도 하지만(아들, 딸 미안.. 엄마도 힘들어...) “엄마, 있잖아, 유치원에서(혹은 어린이집에서)~”로 시작하는 말에는 속수무책이다. 아이가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할 때만큼은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의 말을 듣는다. 반대로 내 이야기도 아이들에게 많이 하려고 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힘들었던 일도, 마음이 슬펐던 일이나 기쁜 일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바꾸어 충분히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엄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온전히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다른 일을 기웃거리기 일쑤다. 욕심은 많고 마음은 바쁘니 언제나 여유가 부족해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대할 때도 많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다짐하지만 단 하루로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요리도 살림도 형편없어서 대단히 잘 해먹이지도 못한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그래도 이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아이와의 대화이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저녁. 아이들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오늘 저녁이면 산타 할아버지가 오셔서 저희들이 원하던 선물을 주고 가실 거란 생각 덕분이었겠지. 식사 자리에서는 대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은 어쩐지 좀 다른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사랑아, 엄마가 궁금한 게 있는데.”
“뭐야?”
“사랑이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 것 같아?”
“사랑하는 마음은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지.”
“사랑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랑 아빠뿐이야?”
“응. 엄마랑 아빠. 부모님이 사랑이지.”
“그럼 엄마 아빠를 왜 사랑하는데?”
“엄마 아빠니까. 부모님이니까 사랑하지.”
아이에게 사랑은 오직 엄마와 아빠를 향한 마음.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저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마음.
“사랑아, 그럼 사랑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거라고 생각해?”
“음..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이랑 놀면 헤어지고 싶지가 않아. 그게 좋아하는 거지.”
“우와, 사랑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마음은 헤어지고 싶지 않고 계속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구나!”
“응. 맞아.”
“근데 좋아하는 거랑, 사랑하는 거랑은 달라?”
“다르지. 사랑하는 건 엄마랑 아빠만이라니까.”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정답. 너무나 분명하고 정확한 답. 그리고 친구들은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 사랑은 오직 엄마 아빠뿐이라는 말.
“그럼 슬픈 건?”
“슬픈 건, 내가 엄마한테 혼났을 때 있지. 혼나고 나면 마음이 엄청 아프고 눈물이 나. 그게 슬픈 거야.”
“그랬구나. 사랑이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슬펐던 적은 없어?”
“응, 엄마한테 혼나고 나면 슬프지.”
반성. 반성. 반성. 역시나 오늘도 반성.
“근데 엄마, 화는 왜 나는 거야?”
“화? 엄마가 너한테 왜 화를 내냐는 거야?”
“아니, 화라는 게 왜 나는 거냐고.”
“화라는 마음이 왜 생기는 거냐고?”
“응.”
“아... 음.... 엄마가 화가 날 때를 생각해보면 엄마가 생각하거나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것 같아.”
“엄마, 나는 친구들이 내 놀이를 방해하거나 내가 이야기하는 데 막 끼어들면 화가 나.”
“그래서 친구들에게 화를 내?”
“응, 나는 엄청 무서운 친구야. 친구들이 그러면 내가 엄청 무섭게 혼 내.”
“근데 사랑아, 같은 친구들끼리 혼을 낸다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 사랑이가 화가 날 수는 있는데, 막 소리를 지르거나 무섭게 표현하지 말고 그러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건 어때?”
“엄마도 안 그러잖아. 엄마, 내가 왜 무서운 친구가 됐는지 알아? 엄마한테 많이 혼나봐서 그래. 나도 원래는 무서운 친구가 아니었는데, 엄마한테 엄청 무섭게 혼나보니까 나도 친구들한테 그렇게 하게 됐어.”
아, 이쯤 대화를 했을 때는 대화를 그만두고 싶었다. 정말. 아이와의 대화에서는 수시로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데, 그걸 수용하면서 넘어가는 일이 너무 어렵다. 사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그런 일들을 떠올리면 부끄럽고, 미안하고, 후회되는데 그걸 아이의 목소리로, 아이의 언어로 확인하고 나면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대화를 얼렁뚱땅 접어버리면 이 대화 주제는 다시 꺼내기 어렵다. 직면. 직면하자.
아마 아이는 얼마 전에 나에게 크게 혼 난 일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아이가 잘못을 하기도 했지만, 그 잘못을 뛰어넘을 만큼 내 감정이 격해져서 아이를 감정적으로 몰아붙였었다. 물론 그 일이 있었던 당시에도 아이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했지만, 아이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상처와 두려움으로 크게 남은 듯했다.
“사랑아, 엄마가 네 얘기를 들으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랑이가 엄마한테 화내는 법을 배워서 친구들에게도 무섭게 한다니 엄마가 너무 부끄러워.”
“엄마 그때 진짜 무서웠어.”
“엄마가 다시 한번 사과할게. 진짜 진짜 미안해.”
“엄마가 화를 안내면 좋겠어.”
“알았어. 그런데 사랑아, 네가 뭔가를 잘못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면 엄마가 안된다고 분명히 말해줘야 하는데 사랑이는 엄마가 안된다고만 말해도 엄마가 화를 낸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엄마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 그럴 때는 부드럽게 ‘사랑아 하지 마, 안 돼’ 그러면 되잖아.”(정말 적절한 목소리 톤으로 예를 들어주는 아들..)
“그런데 엄마가 부드럽게 한두 번 말해도 사랑이가 말을 안 들을 때가 종종 있잖아. 그럴 때는 엄마가 단호하게 말하게 되는데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사랑이는 엄마가 화낸다고 생각하니까.”
“엄마, 이렇게 해 봐. ‘사랑아, 안 돼.(정말 부드러운 말투로)'”
“이렇게? '사랑아, 안돼(내 딴에는 정말 부드럽게.)'”
“아니야. 더 부드럽게.”
“사랑아, 안 돼.”
“응! 좋아.”
“그럼 사랑이가 한 번씩 엄마가 안 된다고 했을 때 계속 짜증을 부르거나 막 소리를 지르거나 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
“그럴 때는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혼자 진정할 수 있도록.”
“그런데 엄마는 네가 엄마를 보란 듯이 들으란 듯이 막 짜증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면 그걸 참는 게 너무 힘들어.”
“그럼 내가 여기에만 딱 앉아서 그럴게.”
“거실 말고, 방에 들어가서 하는 건?”
“엄마가 보이는 곳에 있어야 마음이 더 빨리 진정돼.”
“아, 그런 거구나. 알았어. 그럼 우리 둘 다 약속하자.”
“약속!”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와 나눈 대화. 나의 모자람을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할 방향을 모색하는 대화.
아이와의 대화가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아니, 아이와는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습이 유모차에 앉은 아가가 너무나 안정적인 자세로 휴대전화를 들고 유튜브를 보는 모습과, 식당에서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대화를 하고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어른이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아이와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이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애랑 무슨 이야기를 해.'라고. 사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어른들의 대화에 낄라치면 “어디, 어른들 말하는데!” 혹은 “어른들 이야기야. 아이들은 몰라도 돼.”라며 핀잔부터 들은 세대가 아닌가. 그러니 우리의 내면에는 어른과 대화해 본 '아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내 아이와 시도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샘, 우리 엄마 아빠랑은 대화가 안 돼요.”, “선생님, 애가 집에 오면 말을 안 해요.”이다. 어쩌면 아이들의 조잘거림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때도, 아이가 내 이야기를 온 마음 다해 들어줄 때도 그리 길지 않을지 모른다.
아이와의 대화를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대상과의 대화가 즐겁지 않을 리 없으므로.때론 오늘의 나처럼, 내 잘못과 마주해야 할 순간이 있더라도. 그것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일 또한 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