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출처: 비스듬히(정현종 시선집)
우리는 많은 이들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혼자만 꼿꼿하게 서있는 나무도 알고 보면 '공기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듯 보이는 이도 곰곰이 살펴보면 누군가의 삶에, 시간에, 마음에 기대어 있습니다. 태초에 혼자 태어나 자란 이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비스듬히 서있습니다. 그리하여 비스듬한 존재에 기대고 비스듬한 존재를 받치며 살아갑니다.
시를 여러 번 읽다 보니, 시의 시작은 '기댐'이었으나 시의 끝은 '받침'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습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기대어 태어나고 자란 생은, 누군가를 든든히 받칠 수 있는 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충분히 잘 기대었던 사람은 누군가를 받쳐줄 힘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직 유아기인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두 아이가 충분히 기댈 수 있는 엄마이고 싶습니다. 매일 학교에서 미성년의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흔들리고 휘청일 때 잘 받쳐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어요. 받칠 힘보다는 기댈 언덕이 필요한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 누군가를 잘 받쳐줄 수 있는 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