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질문입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넋두리에 가깝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은 다양하지만 맥은 상통합니다. 대부분 ‘성적이 만족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외부 평가의 결과로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아이들은 수시로 불안을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뭐 어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야."라고 답하고 싶지만, 솔직히 선뜻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불안은 실체가 분명하고, 뭐 어떻냐는 말로 위로하기엔 그 깊이가 너무 깊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저도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뿐만이었을까요. 취업 전까지는, 아니 결혼 전까지는, 아니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의 감옥에 수시로 저를 가두었어요. 세상이 정해놓은 답이 분명해 보였고 나는 그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뭐 어때, 그냥 너는 너대로의 가치가 있어’라는 말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절박한 상황에서 ’뭐 어때?’라니요.
그 “어때!”라는 말이 희한하게도 위로로 전해지는 시입니다. '다들 참나무가/정상이/ 고산이/크낙새가/보름달이/상록수가/강이/꽃이 더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잡나무여도/바닥이어도/벌새여도/그믐달이어도/낙엽이어도/개울이어도/풀이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어때’라는 말은 ‘괜찮아’의 다른 말이네요.
시의 언어처럼, 뭐 어떤 가요. 다 괜찮습니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요. 다들 정상을 향해 나아갈 때, 바닥이어도 괜찮습니다. 모두가 비상할 때, 머뭇거려도 괜찮아요. 이게 옳은가, 저게 옳은가 좀 헤매도 괜찮아요. 남들이 다 꽃 피울 때 겨우 싹을 틔워도 괜찮습니다. 나는 벚꽃나무일 수도 있고, 소나무일 수도 있지만, 강아지풀일 수도 있고, 민들레꽃일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선 자리에서 무사히 뿌리를 내린 것만으로도, 아니 어쩌면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것도 아니면 씨앗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