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편지(곽재구)
[시 쓰는 여름] 마흔세 번째 시
새벽 편지(곽재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출처: <전장포 아리랑>,민음사,1985
첫째 아이가 일요일 저녁부터 열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만 6세가 되는 동안 갖은 바이러스를 다 겪어 왔는데, 이렇게까지 힘들어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어제는 시 배달도 하루 멈추었어요. (감사일기를 빌미로 매일 글쓰기 약속은 지켰습니다만..) 어제 하루가 마지막 고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착각은 자유였습니다. 아이는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는 새벽에도 40도를 웃돌며 고통스러워했어요. 낮에는 잘 지냈는데, 밤에는 고통이 배가 되는지 정말로 힘들어했습니다.
힘들어하는 아이 곁에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무력함에 압도되기 싫어 감사 일기를 썼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배달할 시를 골랐습니다. 사실 매주 주말에 미리 그다음 주에 배달할 시를 다 골라놓는데요. 이번에는 아이가 아프다는 변수가 생기면서 골라놓은 시들이 제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저는 제가 읽고 좋은 시만 배달합니다. 매우 편파적이지요.)
새벽편지(곽재구)는 새벽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한동안은 새벽이라는 시간이 무척 탐스럽게 느껴집니다. 새벽은 ‘마르지 않는 샘’을 품은 시간이자,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시간입니다. ‘아름다움이 창을 열고 들어서는’ 시간이고,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 마디’의 편지를 쓸 수 있는 용기가 나는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을 발견하는 시간이에요.
시에서 말하는 새벽은 아침이 오기 전 고요한 시간을 말하지만, 저에게 새벽은 하루가 끝나고 새날로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새벽 기상에는 매번 실패하고 말아서 차라리 늦게 자는 편을 선택했어요.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작은 방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단 몇 쪽이라도 좋으니 어제 읽다 남겨둔 책을 읽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 쓰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불안과 두려움, 우울과 슬픔에 자리를 내어준 마음 안으로, 희망과 사랑이 빼꼼 고개를 내밉니다.
아이는 결국 오늘 입원을 했습니다. 병실이 없어 3일이나 고열을 앓은 뒤에야 입원을 했어요. 저녁까지도 여전히 고열을 앓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열이 조금 떨어졌고, 오랜만에 편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입원 짐을 꾸리며 노트북을 챙겼습니다. 아이가 잠들고 난 밤, 혹여 함께 잠들지 않는다면 새벽 편지 쓰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남편과 친정엄마는 ‘애들 잘 때 잠을 자’라며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합니다. 친한 친구들은 ‘도대체 무슨 에너지로 매일 그렇게 글을 쓰냐’라며 진심으로 궁금해하고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지만, 제게 이 시간은 ‘새벽 편지’를 쓰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고, 무엇을 향한 그리움을 써 내려가며 ‘희망과 사랑의 샘’을 발견하는 겁니다.
이렇게 써 내려가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합니다. 잘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요. 마음을 정돈하고 비워내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숱한 새벽에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는 사람이고 싶다, 소망하듯 다짐해 봅니다.
오늘 밤은 아이가 꼭 잘 잤으면, 그래서 지독한 바이러스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