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 시를 배달하고, 함께 시 필사를 하는 분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침부터 할머니 생각이 나서 많이 우셨다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이 시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마음이 꼭 그랬습니다. 저에게도 할머니는 각별한 분이시거든요.
외할머니는 올해 여든여덟이 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모든 유년기에는 외할머니가 계셨어요. 일곱 살부터 스물여덟까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저에게 두 분은 또다른 부모님이셨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셨던 엄마의 시간을 채워준 분들이셨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빠의 빈자리를 메워준 분들이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든든하던 두 분의 그늘에서 저는 참 풍성하고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4년 전 외할아버지가 먼저 하늘로 가셨습니다. 이제 친정집에는 엄마와 외할머니 두 분만 남으셨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로 급격히 노쇠해지셨습니다. 가끔 전화를 드리는데, 그때마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언제나 한결같아요.
“잘 살아라이.”
할머니는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살라’고요. 어떤 내용의 통화 끝에도 마지막 말은 늘 '잘 살라’는 당부이십니다. 그 말에는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을까요. ‘애들이랑 남편 잘 챙겨라,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해라, 언제나 행복해라, 걱정하지 말고 나아가라,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라….‘ 미처 가늠할 수조차 없는 깊고 진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을 겁니다.
‘할머니 편지’의 마지막 연 '돈 멧 닢 보낸다/공책 사라', 이 투박한 진심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할머니의 ‘잘 살라’는 말이 떠올라서였습니다. ‘돈 멧 닢 보낸다/공책 사라’는 말에 숨은 마음은 ‘얼마 되지 않는 가진 것을 내어 너에게 보내니, 그것으로 네가 나아지는 무언가를 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할머니가 제게 건네는 마지막 말, ’잘 살라‘는 당부의 또 다른 표현 같습니다.
아,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러 번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매번 꼭 마지막 통화인 것처럼 잘 살라 인사하시는 할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 한 통 드려야겠습니다. 할머니의 잘 살라는 한 마디를 듣고 나면 어쩐지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잘 살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