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마음의 물길을 트다

소나기 지나가시고(송진권)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열두 번째 시


소나기 지나가시고(송진권)


그렇지

마음도 이럴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소나기 한줄금 지나가시고

삽 한자루 둘러메고 물꼬 보러 나가듯이

백로 듬성듬성 앉은 논에 나가 물꼬 트듯이

요렇게 툭 터놓을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물꼬를 타놓아 개구리밥 섞여 흐르는 논물같이

아랫배미로 흘러야지

속에 켜켜이 쟁이고 살다보면

자꾸 벌레나 끼고 썩기나 하지

툭 타놓아서 보기 좋고 물소리도 듣기 좋게

윗배미 지나 아랫배미로

논물이 흘러 내려가듯이

요렇게 툭 타놓을 때도 있어야 하는거라


출처: <원근법 배우는 시간>



며칠은 이어질 줄 알았던 비가 그치고 종일 쨍한 날이었습니다. 비 온 뒤 하늘은 어찌나 청명한지요! 그리움으로 흠뻑 젖었던 어제와 달리, 마음에 활력과 생기가 도는 하루였어요.


‘소나기 지나가시고(송진권)’는 소나기가 ‘타놓은’ 물꼬의 시원함을, 마음 쏟아낸 후의 후련함과 연결한 시입니다. '요렇게 툭 타놓을 때도 있어야 하는 거라'라는 구절을 소리 내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마도 '툭'이라는 부사어를 읽을 때, 온몸에 힘이 '툭' 풀리는 경험을 하실 겁니다. 저는 이 행을 몇 번이나 소리 내 읽었어요. 정말로 마음이 '툭' 타지는 것 같아서요.


구름 잔뜩 낀 하늘이 맑은 하늘을 되찾으려면, 구름 가득 머금은 비를 쏴 쏟아내야 합니다. 머금고 있는 동안 내내 검고 흐리던 하늘이, 소나기 쏟아낸 후에는 푸른빛으로 바뀌어요. 소나기 맞은 논은 또 어떤가요. 시의 표현대로 이내 '물꼬가 트여'요. 트인 물은 물꼬를 따라 흘러, 벌레도 끼지 않고 썩지도 않습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묻어두고 쌓아두면 끝내는 곪아버립니다. ‘툭’ 터놓을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으면, 끝내는 썩어버리고 마는 것이 마음이에요.


학교에서 만나는 십 대 아이들 중 다수가 마음을 터놓는 일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특히나 힘들고 아픈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안타깝고 애처로운 마음에 한 마디 건네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사연을 늘어놓습니다. 듣다 보면 이런 아픔을 끌어안은 채 어떻게 버텨왔을까 싶은, 깊고 진한 슬픔을 품은 아이들도 있어요.


마음을 터놓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꾸 속으로 쟁이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 같지 않은 순간이 많아져요. 아이들에게도 말합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네 마음을 털어놓으라고요. 해결책이 없더라도,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덜어질 수 있다고요.


덜어내고 흘려보내야 마음에도 빈 공간이 생깁니다. 마음의 물꼬를 트는 일은 그래서 더없이 중요해요. 새로운 마음을 채워 넣으려면 묶은 마음들을 비워내는 일이 먼저니까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툭' 물꼬가 트여, 묵은 슬픔과 아픔이 흘러나가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하여 ‘보기도 좋고 물소리도 듣기 좋’은 마음의 물길을 지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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