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나이(박성우)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열세 번째 시



나이(박성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출처:<웃는 연습>


오늘부터 만 나이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12월에 태어난 저는 별안간 2살이나 어려졌어요. 원래대로면 올해가 마흔이 되는 해였는데, 갑자기 다시 삼십 대가 되었어요. 서른아홉도 아니고, 서른여덟이요! 선물 같기도 하고, 보너스 같기도 한 2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잘 꾸려나가야 하나 생각해 본 하루였습니다.


어릴 때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이 든다'는 행위가 너무나 피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고부터는 좀 다르더군요. '이렇게 한 살씩 차곡차곡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실감하게 되었어요. 물론 지금도 충분히 젊은 나이지만, 확실히 십 대와 이십 대에 느꼈던 생기는 아득해졌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셔도 다음날을 걱정하게 됩니다. 며칠을 무리하면 기다렸다는 듯 몸의 어딘가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어요. 아이들을 재우며 먼저 곯아떨어지기 일쑤지요. 그뿐일까요. 상처받을 일은 애초에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몸과 마음의 계산기를 먼저 두드려보아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진 만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만 갑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참 별로인 것 같지만, 누군가 저에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니! 지금이 좋아!’라고 자신 있게 답할 겁니다.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저는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좋습니다. 그래서였어요. ‘나이(박성우)‘를 처음 읽었을 때, 어쩐지 조금 씁쓸하고 슬퍼지더라고요. '중심에서 멀어진다는 것,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라는 표현이 뭐랄까요. 생의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로 밀려나는 느낌, 아프고 쓰린 일에 익숙해진다는 느낌으로 와닿았거든요.


여러 번 시를 반복해서 읽고, 필사를 하면서 불현듯 ‘나이테’가 떠올랐어요. 나무의 나이테는 중심에서 원을 그려나가며 나무가 자라온 시간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이 시에서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이 꼭 나무가 나이테를 그려가는 과정처럼 읽혔어요. 그렇게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외연을 넓혀나가며 나를 키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더군요. 나무가 자라 줄기를 굵고 단단하게 키워나가듯이, 우리도 나이 들어가며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또한 그리 슬프게 읽히지만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젖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요. 제가 만나는 십 대 아이들은 작은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어떤 외부자극에도 '무심'하지 못해요. 아이들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의 감정선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작은 가랑비에도 젖고 쓰러지는 여린 줄기처럼요. 그에 비해 지금의 저는 궂은비에도 조금은 덜 흔들립니다. 여전히 무심히 익숙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은 무뎌졌어요. 익숙해졌다고 덜 아프고 덜 힘든 것은 아니지만, 견디는 힘이 조금 더 생긴 것 같습니다.


만 나이 통일법으로 한 살 혹은 두 살쯤 어려지셨을 오늘,

여러분은 ‘나이 듦’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문득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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