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째 아이가 두 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습니다. 처음 두 발 자전거에 앉았을 때는 두 발을 페달 위에 올리기도 버거워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했어요.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출발할 때만 밀어주면 혼자 타는 데까지 성공을 하더군요.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을까요. 그렇게도 힘들어하던 혼자 출발하기까지 해냈습니다. 하루를 꼬박 자전거 타기에 쏟아붓더니, 끝내 두 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어요.
아이가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날 저녁, 아이의 벗은 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처가 있었어요. 보호대를 했던 무릎과 팔꿈치를 제외한 다리와 팔은 긁히고 부딪힌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엄마! 나 하루 만에 자전거 타기 성공이지? 나 진짜 잘 탔지?"
"응, 멋지더라. 그런데 여기 안 아파?"
"괜찮은데?"
몸의 상처와 별개로, 아이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습니다. 어찌나 뿌듯해하는지! 아이의 다친 몸을 바라보며 애틋해지던 마음이 금세 대견함과 기특함으로 바뀌었어요. 넘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덕분에, 아이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또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못 탑니다. 제 아이처럼 어린 시절에는 자전거를 아예 접하지 못했어요. 처음 자전거를 탈 기회가 생긴 것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 발 자전거에 발을 올리자마자 순간 휘청이는 그 느낌을 감당할 수 없더라고요. 넘어질 것 같은 찰나의 순간이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어떻게든 안 넘어지려고 버티다 보니, 핸들을 잡은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어요. 핸들을 세게 잡으면 잡을수록 어쩐지 자전거는 더 세게 휘청거렸습니다.
누가 뒤에서 잡아줘서 겨우 출발을 하더라도, '넘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브레이크를 잡게 됐어요.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더 휘청이게 만든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서 다시 출발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도 어려웠어요. 결국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했고, 서른여덟이 된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넘어짐에 대하여(정호승)'를 읽고 옮겨 쓰며, 자전거를 배우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넘어지지 않으려 버틸수록 쉽게 넘어져버리던 기억을요. 혹여 넘어지더라도 덜 다칠 만한 땅을 찾아 헤매느라, 정작 자전거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도요.
살아가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넘어지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자전거처럼, 넘어지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게 삶입니다. 넘어짐을 두려워했다가는 '거친 삼각파도'에 휩쓸려 천길 물속으로 빠질지도 몰라요. 넘어짐을 받아들이면, 칠흑 같은 물속에서도 '수련'과 '푸른 물고기'를 만날 수있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합니다. 넘어질 일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지만, 일어서 나아갈 것을 생각하면 축복이 분명합니다. 넘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넘어지는 순간에 배우는 것들이 반드시 있으니까요.
"엄마, 엄마도 자전거 배워. 이제 우리 집에서 자전거 못 타는 사람은 엄마뿐이잖아."
두 발 자전거가 제법 익숙해진 아이는 요즘 저를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합니다. 아무래도 넘어짐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넘어지고 일어서는 축복을 고스란히 누리며, 이번 주말에는 자전거 타기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