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이 있으신가요? 저는 외할머니께서 태몽을 꿔주셨어요. 외할머니가 팔공산 자락에 있는 절에서 약수를 떠 드셨는데, 그 물(아마도 우물) 안에 작은 거북이가 있었다고 해요. 그 주위를 작은 호랑이가 맴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꿈을 꾸신 후 얼마 뒤에 그 절에 직접 가게 되셨는데, 가 보니 실제로 약수 안에 모형 거북이가 있었다고 해요. 이미 사십 년 가까이 지난 꿈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남길 수 있는 걸 보면,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되는 꿈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누군가가 대신 꾸어준/ 태몽’이라는 시의 구절에 너무나 깊이 공감됩니다.
제 두 아이 중 첫째 아이의 태몽은 제 외할머니와 시어머니 두 분께서 꿔주셨어요. 외할머니는 절에서 부처님 전에 올려져 있는 아주 싱싱한 과일을 가지고 오시는 꿈을 꾸셨다고 하고, 시어머니께서는 어떤 집에 들어갔는데 집안 가득 금이 있어서 주머니에 양껏 넣어오시는 꿈을 꾸셨다고 해요. 둘째 아이의 태몽은 제가 직접 꿨는데, 어느 날 저희 집 거실 창문으로 새하얗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와 제 품에 쏙 안기는 꿈이었습니다. 저는 새를 굉장히 무서워하는데요. 그 꿈은 깨어나서도 기분이 너무 묘하고 신비로웠어요. 이게 태몽이구나, 바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박준 시인의 '뱀사골'이라는 시를 읽으며 저는 두 가지 사랑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나의 태몽을 대신 꾸어주고,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생생하게 기억해 주는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태몽은 내가 직접 꾸는 꿈이 아님에도 '나의 꿈'으로 남는 꿈입니다. 나를 품은 부모님(아주 간혹은 가까운 지인)의 꿈자리를 빌려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첫 번째 꿈이에요. 그 꿈을 꾸어주는 이들은 대체로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분들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도 나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존재들이에요. 그들의 사랑은 태몽을 꿔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의 꿈이지만 나는 모르는 꿈 이야기를, 내가 기억에 새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빠짐없이 들려주는 것까지예요. 그리하여 타인의 기억 속에 남은 '나의 가장 오랜 꿈'은 나의 기억으로 전이됩니다.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쉽지만, 첫째의 태몽은 제가 꾸지 못해서 들은 대로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어요. 둘째의 태몽은 제가 꾸었기 때문에 그 감각을 그대로 살려, 시를 써두었어요. 오랜만에 찾아 읽어보니, 그 꿈의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두 아이가 더 자라, 자신들의 첫 번째 꿈을 궁금해할 때가 오면 이 글과 함께 일기와 시를 전해주고 싶어요. 그 기록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잘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요.
다시 '뱀사골'로 돌아가볼게요. 시에 담긴 첫 번째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라면 두 번째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입니다. 사실 이게 더 전면에 드러난 사랑이지요. 이 시에서 태몽을 주고받는 두 사람은 연인인 것 같습니다. 제목인 뱀사골은 지명이니, 아마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이 아닐까 해요. 둘은 마주 앉아 서로의 태몽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여기서 연인 간의 사랑을 본 이유는, 두 사람이 하고 많은 이야기 중 '태몽'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랑의 감정이 짙어지면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 집니다. 오늘 먹은 메뉴와 같은 사소한 것부터, 가치관과 취향 같은 꽤 깊은 것까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어 져요. 밤새 이야기를 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뱀사골’의 두 남녀는 아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때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살아온 이야기, 살아낸 이야기를 다해도 어딘가 부족합니다. 둘은 서로가 존재하기 전의 이야기까지 나누기로 해요. 나의 연인을 위해 '누군가가 대신 꾸어준 꿈'을, '가장 오래 기억될 꿈'을 묻고 답합니다.
남편과의 연애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저희도 그때는 밤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던 것 같아요. 연인에서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면서부터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틈이 없어졌지만요. 어쩐지 조금 서운하기도 하네요. 그래도 지금 우리가 이토록 단단한 인연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우리가 나눈 사소하고도 깊은 이야기들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 대화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이어 우리 두 사람을 잘 이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의 태몽은 무엇인가요? 혹, 자녀가 있으시다면 자녀의 태몽은 무엇이었나요? 오늘 밤은 존재 이전의 꿈 이야기를 기록해 보심이 어떠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