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희망인가(정우영)
[시 쓰는 여름] 스물아홉 번째 시
사람만이 희망인가(정우영)
사람만이 이 땅의 희망인가
사람의 마음만이 세상의 중심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변두리에서 오히려 중심이 되는
저 모진 생명들은 다 무엇인가.
하찮은 풀의 마음도 우리와 같아서
거기서도 한 세상이 태어나고
나무 한그루의 사랑도 우리와 같아서
간절한 그리움으로 몸이 마른다.
안개 자우룩이 피어나는 어느날 새벽,
세상의 뿌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라.
풀과 나무까지 안쓰럽게 보듬고 선
한 어미의 다감한 근심이 뒤척이고 있을 것이다.
출처:<집이 떠나갔다>,창비, 2005
지난 학기에 학생들과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쓴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는 책으로 독서 기반 주제 탐구 활동을 했습니다. 공통 도서로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모둠 독서 토의를 한 후, 개별 진로 희망 계열과 관련된 환경 문제를 주제로 잡아 보고서 쓰기 활동을 진행했어요. (학교를 졸업하신 지 수년이 지나신 분들께는 좀 낯선 수업이실 것 같습니다만, 수업에 대한 긴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하기로 해요.^^)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환경 관련 에세이입니다. 타일러 라쉬의 꿈이 기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해요. 어릴 때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사소한 행동 하나도 환경을 지키는 쪽으로 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타일러 라쉬는 환경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진정성 있는 글로 다가왔어요. 개개인이 이 정도로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기업도 정부도 환경에 무감할 수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끝내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지키는 길이 되겠다 확신했고요.
시 이야기 대신 지난 수업 이야기를 장황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저는 지난 학기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어요. (요즘은 생활기록부에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라고 해서 각 과목에서 한 학기 동안 수업한 내용과 수업 과정에서 학생들의 성취를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학생들의 1학기 활동 결과물을 정리하다 보니, 학생들의 활동 내용과 배움이 모두 환경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었어요. 그러다 어제 이 시, '사람만이 희망인가(정우영)'를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운 마음이었는지요.
시의 화자(시 안에서 말하는 이)는 '사람의 마음만이 세상의 중심인가'라고 묻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 변두리(물론 사람의 시선에서 변두리겠지요)에서 피어나는 모진 생명(풀과 나무)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요.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어미'는 아무래도 지구 같습니다. 자신에게 뿌리내리고 생명을 키워가는 풀과 나무를 안쓰럽게 보듬고 선 지구 말입니다. 지구는 다감한 근심으로 뒤척이고 있어요.
사람도 지구에 뿌리내린 생명 중 하나입니다. 풀과 나무와 다를 바가 없어요. 지구라는 어미가 아프고 병들면, 풀과 나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뿌리도 흔들립니다. 쉽게 쓰러지고 쉽게 사그라질 수 있어요. 최근에 발생하는 폭염과 폭우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의 하나라는 것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동하기를 주저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오늘 아이들을 따라 놀이터에 나갔다가 찌는 더위를 참지 못하고 일회용 컵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의 갈증은 해소되었지만, 지구에 오래도록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를 보탰네요. (제 마음만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다 보니, 끔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병들어가다가는 오십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할 것이고 생태계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십 년이라니요. 그럼 제 아이들이 겨우 오십 대인 걸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다 보니, 지구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덜 먹고, 덜 쓰고, 덜 사고, 덜 밝히고. 더하기보다는 빼기가 필요하겠어요.
사람이 이 땅의 진정한 희망이 되려면, 다른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 마음만이 중심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마음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모두 중심이라 여기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아요.
*덧붙임.
오늘은 교사인 저에게 무척이나 가혹하고 힘든 날입니다. 약속한 시 배달을 하고, 학생들의 생기부를 쓰고, 이렇게 브런치 글도 쓰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만은 큰 바위로 짓눌린 듯 아프고 답답한 날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이토록 큰 무게로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