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정현종)
[시 쓰는 여름] 스물여덟 번째 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출처:<섬>, 문학판, 2015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순간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 얘기를 부러 하지 않아도 어쩐지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사람, 상대의 이야기를 캐묻지 않아도 왠지 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은 내게 주어진 시간의 실타래를 찰찰 다 풀어쓰고 싶습니다.
시인이 포착한 순간은 그런 순간인 것 같아요.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요. 저는 이 시에서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이스트는 빵을 부풀리는 데 쓰는 재료입니다. 그와 나 사이에는 근사한 말이나 거창한 말이 필요 없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말, 어쩌면 쓸데없는 말(잡담)이어도 충분합니다. 그런 말들로 시간을 원래보다 더 부풀려 쓰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풍경 같은 사람이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지요.
오늘 오랜만에 하늘이 맑았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녀온 두 아이와 오랜만에 놀이터투어를 했어요. 빗물을 머금어 한층 푸르러진 여름 나무와 쨍하게 내리쬐는 여름 햇살 사이를 두 아이가 달려가요. 멀어지는 두 아이를 바라보는데,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난다‘라는 문장이 고스란히 와닿았어요. '아, 풍경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정말 무의미하지만 무해한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어보았습니다. 깔깔거리고 낄낄대며 웃고 떠든 시간이었어요.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저의 기억 속에는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토록 푸르른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놀이터를 뛰고 달렸던 그 감각에 대한 기억이면 충분합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에 이스트를 넣는다는 건, 잠깐 스쳐 지나갈 찰나의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에 간직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한가 봅니다.
오늘 만난 이들 중에 풍경으로 피어난 사람이 있으셨나요? 시간에 이스트를 넣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요? 오늘이 아쉬우시다면, 내일은, 주말은, 풍경 같은 이와 함께 해보시면 어떨까요. 잡담으로 시간을 부풀리고 싶은 이와요. 아! '누군가'를 떠올리시기 어려우시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풍경 같은 사람'이 되어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벌써 수요일입니다. 내일도 맑고 선명한 여름날이기를 바라며 오늘의 시 배달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