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다정하다(양애경)
[시 쓰는 여름] 스물일곱 번째 시
별은 다정하다(양애경)
집에 돌아오며 언덕길에서
별을 본다
별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별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반짝반짝하는 거겠지만
지구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내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눈에 닿는 별빛이 몇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든지
그 별이 이미 폭발하여 우주 속에 흩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든지
보이저가 가보니까 토성의 위성은 열여덟 개가 아니라
사실은 스물한 개였다든지
그런 걸 알아도 그렇다
오히려 나도
다음 생에는
작은 메탄 알갱이로
푸른 해왕성과 얽혀 천천히 돌면서
영혼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좋겠다 싶다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사람 같아서
가족의 식탁에 깨끗이 씻은 식기를 늘어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가운데 내려놓는 여자 같아서
별은 다정하다
출처: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창작과비평사, 1997
몇 년 전부터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라온 책 제목들 중에 '다정한'이 포함된 것들이 많아졌어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다정소감(김혼비)',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이진민)', '다정한 서술자(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매일매일(백수린)', '다정한 구원(임경선)' 등. 트렌드에 민감한 책의 제목에 이토록 '다정한'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정한 마음을 갈급하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다정함이 주는 힘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다정하게 먼저 말을 걸면 학생들은 대번에 마음을 열어줍니다. 남편과 냉전이 길어질 때, 용기 내어 다정한 한 마디를 건네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입증하듯 순식간에 집안의 온도가 올라가요. 아이들의 투정이 길어질 때 화를 억누르고 다정하게 안아주기를 선택하면 아이들의 투정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듭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에게 다정한 안부 인사를 전하면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간 못다 한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다정한 말, 다정한 몸짓, 다정한 미소에는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너를 생각하고 있어, 너에게 마음을 쏟고 있어, 너와 함께 하고 싶어'라는 말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다정함이 아닐까 해요. 그러니 다정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쏟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별은 다정하다(양애경)'에서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에서 다정함을 느낍니다. 철저히 혼자가 된 것 같은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 마치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여기서 너를 지켜주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우리는 사실, 다 알고 있습니다. 별의 진실을요.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내가 혼자인 밤에, 내가 어둠 속에 갇힌 오늘밤에, 나와 눈 마주친 유일한 빛이 별이라면 이미 별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따스히 맞아주는 엄마의 품 같아요.
비가 너무 많이, 그리고 오래 내리네요.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별은커녕 해도 못 본 지 오래되었지만요.) 아픔이 즐비한 밤이 이어지는 요즘, 옅은 별빛 같은 다정함을 품은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쉽게 잠드는 밤이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