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의 힘으로 나아가기

정지의 힘(백무산)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서른두 번째 시


정지의 힘(백무산)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출처:<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창비시선 442, 2020


2주간의 휴가가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눈 감으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고, 눈뜨면 요일이 바뀌어있었어요. 확실히 시간에는 상대성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같은 속도라면 휴가 기간만 이렇게 빨리 지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


휴가지에서 작은 책방에 들러 시집 세 권을 구매했어요. 천천히 읽다가 새롭게 시 쓰는 여름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시를 한 편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오랜만에 드릴 시는 ‘정지의 힘(백무산)’입니다.


‘정지의 힘’에서는 기차를 세우고, 시간을 멈추고, 무언가를 하지도 되지도 않고, 세상을 멈추고, 그리하여 정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달리고 나아가고 알게 되고 내가 되고 피어난다고 말합니다. ‘정지’의 힘이 있어야만, ‘나아감’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해요.


계속 달리기만 한다고 끝없이 속력이 붙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자꾸 한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빨리 알아차리게 되는 것도 아녜요. 무엇이 되고자 애 쓴다고 해서 무조건 진짜 ’나‘가 되는 것도 아니죠.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씨앗이라는 정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무 오래 멈춰 있는 건 아닌가’, 불안할 때가 있었어요. 오랜 육아 휴직 기간이 그랬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은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데 나는 이렇게 멈춰서 뭘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어요. 열심히 살림을 살고 어여쁜 두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면서도, 몇 년째 제자리인 경력과 더 이상 잔고가 채워지지 않는 월급 통장을 볼 때마다 이대로 완전히 멈추게 될까 봐 마음이 소란스러웠어요.


복직 2년 차, 스스로 육아 휴직 이전보다 조금은 나은 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멈춰있다고 생각한 그 시간들이 결코 사라진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커졌어요. ‘나’의 눈으로만 보던 세상보다 ‘엄마’의 눈이 더해진 세상에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그때 정지했던 힘이 있었기에 지금은 달리고, 나아가고, 진짜 ‘나’가 되고, 피어나는 중입니다.


멈추기 두려우신가요.

두 눈 질끈 감고, 멈춰보세요. 정지의 힘으로 꽃처럼 피어나실 겁니다. 진짜 ’나‘가 되실 거예요.


덧붙임. 저는 이미 휴가가 끝났지만, 독자님들 중에는 여전히 휴가를 떠나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잠시라도 좋으니, 이 찌는 더위에 짧은 휴가라도 꼭 누리시길! 휴가는 정지의 힘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기간이니까요. 일상의 흐름에서 비켜나서 멈추어 보세요. 그리하여 새 계절을 나아갈 힘을, 더 나은 ‘나’가 될 힘을 채우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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