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쓰는 편지(안상학)
[시 쓰는 여름] 마흔한 번째 시
몽골에서 쓰는 편지(안상학)
독수리가 살고 있는 곳에 독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자꾸만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자꾸만 당신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사랑하고
나도 자꾸만 나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나를 당신이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사랑하는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당신에게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자꾸만 마음이 좋아지는 나에게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출처:<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 사람, 2020
우리말 접미사 중에 ’-답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접미사는 단어 뒤에 붙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접사의 한 종류입니다. (뒤에 붙기 때문에 접미사이고, 앞에 붙으면 접두사입니다.) ‘-답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성질이 있음(예. 꽃답다, 정답다)’ 혹은 ‘어떤 특성이나 자격이 있음(너답다, 철수답다, 엄마답다)’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나와요. 엄마답다고 하면,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다 혹은 엄마로서의 특성을 갖추었다’라는 뜻이 되지요.
‘-답다‘를 장황하게 말한 이유는, 바로 ’몽골에서 쓴 편지(안상학)‘가 ’다움‘을 이야기하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는 ’-답다‘가 여러 번 등장해요. ’자작나무다워지는 곳(2연), 나다워지는 곳(2연), 당신다워지는 시간(4연), 나다워지는 시간(5연)‘ 모두에 ’-답다‘가 쓰였습니다. 자작나무가 자작나무로서 존재하는 곳, 내가 나로서의 자격을 온전히 갖춘 장소와 시간, 당신이 당신으로서 자격을 갖춘 시간까지. 이 시는 자기가 자기로서 오롯이 존재하는 시공간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시입니다.
‘나답다’라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삼십 대 중반을 지나면서 처음으로 나다움을 고민했습니다. 이전까지는 ‘학생다움’, ‘딸다움’, ‘언니다움’, ‘교사다움’, ‘직장인다움’ 등 제게 부여된 역할에 알맞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어요. 그게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는 동안 ‘나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치열하게 나다움을 고민했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나다움’이 무엇인지 조금은 압니다.(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가 나다워지는 시간’과 ‘내가 나다워지는 공간’이 언제 어디인지 말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은 두 아이가 모두 잠든 늦은 밤입니다. 교사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지요. 가장 나다워지는 공간은 안방 안쪽 작은 파우더룸입니다.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놓인 화장대에 화장품 대신 책과 노트북을 펼쳐두고 글을 씁니다. 오늘도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매일 밤, 기다리는 이 없는 글을 씁니다. 늘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지만, 그분들이 제 글을 기다리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분들과 제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어디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매일 시를 배달하고 글을 쓰겠다는 약속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앉아 글을 씁니다. 안 그런 척 하지만 내심, 이 글을 읽어주실 독자님을 기다리는 마음도 담아서요.
내가 나다워지는 시간과 공간을 찾은 것만으로도 자꾸만 제가 좋아집니다. 누군가의 판단에 휘청이기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곳이 아마도 제게는 ‘몽골‘인가 봅니다. 여러분들도 ’나다워지는 시간과 공간‘을 꼭 찾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기만의 몽골에서 스스로를 더 많이 안아주시고, 사랑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