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김언)
[시 쓰는 여름] 마흔여덟 번째 시
지금(김언)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나기 전에 말하라. 한순간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출처:<한 문장>, 문학과지성사, 2018
언젠가부터 ‘지금’에 대한 절박함이 커졌습니다. 크게 아팠던 적도 없었고, 사랑하는 이를 잃을 뻔한 경험도 없지만, ‘지금을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어요. 특별히 인상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계기를 찾아보자면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국어 교사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을 꼽자면,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 글을 잘 쓸 것이다‘ 입니다. 국어 교사라고 해서 모두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글을 잘 쓰지도 않아요. 고백하자면 저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어요. 시험을 위한, 수업을 위한 텍스트는 많이 읽었지만 삶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부러 책을 찾아 읽을 만큼 독서를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매진하면서 독서에 빠져들었어요. 책을 읽는 동안은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오직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그즈음부터 글쓰기도 함께 시작했지요.
읽은 책이 쌓여갔어요. 분명히 다 다른 갈래의 책이고저자의 출생지도 삶도 다른데, 메시지가 비슷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한결같이 ‘지금’을 강조하고 있더군요. 철학 책은 철학 책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육아서는 육아서대로. 모두 ‘지금’을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이전까지 ‘지금‘을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이라는 시간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수시로 갱신되는 것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고민은 어제나 내일에 더 집중되었어요. 어제 저지른 일을 후회하고 어제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내일 일어나지 않은 일을 불안해하고 내일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지금)을 소비했어요. 그렇게 내일이 오늘(지금)이 되면 이미 어제가 된 오늘(지금)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여러 철학자들의 조언과 소설 속 주인공들의 깨달음을 마음속에 채우며 진짜 오늘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어렴풋하기만 하니까요.)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별다른 일은 없었는데, 아이들의 사진을 한 번에 정리하면서 불쑥 눈물이 터졌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였는데, 사진 속 어제, 그제, 몇 달 전의 아이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그때로 너무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이렇게 예뻤구나, 이렇게 사랑스러웠구나.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그즈음부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 시간도 금방 과거가 되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어요.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매일 온몸이 으스러지게 안아줘야지, 아침에 화가 났어도 등원길에 오른 순간에는 꼭 손을 잡고 걸어야지. 아이들에게 화가 나더라도 잠들기 전에 꼭 그 감정을 털어내고 웃으면서 잠들어야지.’ 숱한 다짐들을 했어요. 그리고 하나씩 지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시작되었던 지금의 소중함을 지키는 일은 삶의 많은 부분들을 바꾸어 놓았어요.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아요.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일단 하고 봅니다. 겉으로는 대범한 듯 보여도 걱정 많고 불안 높던 저는 이제 조금씩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에요.
‘지금(김언)’을 읽으며, ‘그래, 지금 말해야지. 지금 움직어야지. 지금은 변하니까. 지금은 절대적이니까.’라는 울림이 마음 가득 퍼졌어요. 이미 지나간 어제에 집착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에 얽매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 말할 수 있는 시간, 딱 ‘지금’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 잘 살아나가 보려고 해요.
여러분의 ‘지금’은 어떠신지요. 지금의 자리에 어제와 내일을 가득 채우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