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밥(함민복)
[시 쓰는 여름] 마흔아홉 번째 시
긍정적인 밥(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출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1996
시집 한 권 가격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보통 만천 원~만삼천 원선입니다.(온라인 서점은 10% 할인가로 판매하니, 실제 가격은 만 원~만이천 원 정도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시집 한 권에 적게는 서른 편 많게는 오십 편 가까운 시가 실려 있어요. 그러고 보면 시집 한 권의 가격이 참 저렴하지요. 요즘 최저 임금이 9,620원이니, 시집 한 권은 한 시간 정도의 노동 가치가 있는 셈이네요.
시를 좋아합니다. 짧은 시 한 편에 삶의 가치를 깨닫기도 하고, 그늘진 마음에 볕이 들기도 합니다. 사랑을 고백하고픈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이별 후 아린 감정을 위로받기도 합니다. 시집 한 권의 가격은 겨우 만원 남짓이지만, 어떤 시집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매겨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긍정적인 밥(함민복)’은 시의 물질적 가치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생각이 드러나는 시입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가 1996년도에 나왔으니 벌써 27년 전이긴 합니다만, 지금도 시 한 편의 가격은, 시집 한 권의 가격은, 시집 한 권이 팔리면 시인에게 돌아가는 가격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요.(물가상승률을 생각해 본다면요!) 아무리 좋은 시를 써도, 시를 쓰는 일로는 생계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시가 쌀 두 말만큼, 국밥 한 그릇만큼, 굵은소금 한 됫밥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스스로는 어떠실지 몰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감히, 그 이상의 가치가 있고도 남는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시가 좋아서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고, 혼자만 이 좋은 걸 알고 있기 아쉬워서 시 배달을 시작했어요. 인스타그램으로만 하던 일을 브런치에까지 하기 시작한 것은 좋은 시를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까지 마흔아홉 편의 시를 배달했네요. 마흔아홉 편의 시 중에서 마음을 울린 시가 있으셨는지,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로를 얻은 시가 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제 마음에는 천금보다 귀한 시들이었는데 말이죠.^^
시 쓰는 여름은 8월 31일. 오늘로 마무리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함께 시를 필사하고 단상을 나눈 분들이 모두 너무 좋아해 주셔서 시 쓰는 가을도 준비해보려고 해요. 브런치 연재도 이어갈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여름이 저물어 갑니다. 아침저녁 바람의 온도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저무는 여름해에 함께 넘겨버리시고, 오는 가을은 좀 더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시적인 날들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