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이병률)
[시쓰는 가을] 두 번째 시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이병률)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출처 : <찬란>, 문학과지성사, 2011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종종 찾아봅니다. 오늘 시를 읽고는 ‘환대’라는 단어가 떠올라 사전을 찾아봤어요.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라고 하네요.
시에 등장하는 할머니가 ‘나’를 환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러니 친밀한 사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할머니는 좁은 골목 안, (어쩐지 작고 허름할 것 같은) 술집의 주인이고, ‘나’는 어쩌다 오늘 우연히 그곳에 방문한 손님 같아요. ‘나’에게는 일행이 없는 듯하고, 혼자서 누군가에게 주지 못한 꽃다발을 놓고 술잔을 기울인 듯합니다. 꽃다발의 주인이 화자가 아닐 것이라 짐작하는 이유는, 대개 꽃다발을 받는 쪽은 기쁜 일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꽃다발을 받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보다는, 준비한 꽃다발을 전하지 못해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전하지 못한 꽃다발을 두고 술집을 나서고, 할머니는 마늘 빻던 손으로 급하게 달려 나와 꽃다발을 전해줍니다. ‘나’는 전하지 못한 꽃다발을 할머니에게 남기고 돌아서요. ‘또 오기나 하라‘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골목을 나섭니다. 다시 온다는 말도 영영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슬픔, 좌절, 절망을 보았을까요.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라는 할머니의 말은 ’나‘에게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다가옵니다. ’신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이라는 표현에서 짐작건대, ‘나’는 이 생을 그만두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 ’나‘에게 ’또 오라‘, ’다른 데 가지 말라‘, ’집으로 가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큰 힘이 됩니다.
마지막 연에서 ‘신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이 ‘환하게 온다’는 표현은 역설입니다. 밤은 어둡습니다. 환하게 올 수 없지요. 할머니의 말로, 화자의 밤은 환해졌어요. 할머니가 보여준 마음으로, 할머니가 내어준 마음으로 화자의 밤은 더 이상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닙니다. 환한 밤이에요.
다시 ‘환대’로 돌아가볼게요. 이 시에서 환대가 떠오른 이유는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겠네요. 할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았는지도 알 수 없고, 대단한 음식으로 후하게 대접을 해주었는지도 확인할 길 없습니다. 다만, 할머니가 슬픔에 돌아서는 ’나‘를 따듯한 마음으로 대접한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때론 한마디 말에서, 사소한 행동에서 마음을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곤 하니까요.
아이를 임신했을 때, 대중교통을 타면 자리를 양보해 주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배가 많이 나온 편이 아니었는데도 용하게 알아보시고 마음을 내어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아이를 안고 낑낑거리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때, ‘제가 넣어드릴게요’라며 대신 물건을 담아주신 마트 직원분도 계셨습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걷다가 가방에 걸쳐준 아이의 겉옷을 떨어뜨리고 지나갈 때, ‘애기엄마, 여기 애기옷~!’이라며 기꺼이 따라와 옷을 전해주신 분도 계십니다. 초보 운전자 시절에는 깜빡이를 켜고 한참 동안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낑낑대고 있으면 구원자처럼 나타나 제가 차선을 바꿀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운전자분도 계셨어요.
그러고 보니, 제 마음과 몸이 약해졌을 때 저를 구원했던 것은 가까운 이의 깊고 진한 위로도 있었겠지만, 사소한 친절과 말 한마디를 건네주신 분들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런 분들의 마음 덕분에 ’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나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도와주는 마음들이 있구나, 이곳은 여전히 환하고 착한 곳이구나’ 여기며, 고비고비를 잘 넘어온 게 아닐까 싶어요.
얼마 전 비를 맞고 리어카를 끌고 가는 어르신에게 우산을 씌워준 여성분의 사연이 인터넷 신문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습니다. 후속보도를 보니 어르신께 현금까지 쥐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기관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을 텐데, 그분은 별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인터뷰를 거절하셨다고 해요. 그분 입장에서는 별 대단한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마음을 받은 어르신에게는 엄청난 환대였을 겁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진심을 담아 베푸는 마음은 분명한 환대이고, 환대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밤도 환할 수 있으니까요.
문득, 나는 그동안 누군가를 환대하는 사람이었나, 또 반성하게 됩니다. 시를 읽고 글을 쓸수록 자꾸만 삶의 그늘진 곳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다가오는 시간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봅니다. 누군가의 밤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밤이네요.